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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시암고택 (盈德 時庵古宅)-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76호문화재/내가 본 문화재자료 2019. 3. 2. 16:34
영덕 시암고택 (盈德 時庵古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76호
종목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576호
명칭
영덕 시암고택 (盈德 時庵古宅)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
2棟
지정일
2010.06.10
소재지
경상북도 영덕군 원구길 30-1 (영해면)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대흥백씨문중
설명
이 건물은 남진만(1697~1773)이 살림집으로 건립한 것을 그의 5대손 교성(敎成)이 친족인 남고(南皐, 호는 時庵,1807~1879)에게 매도하였다고 한다. 현 소유주의 고조부인 남고는 영양남씨 영해 입향조인 송정의 14대손이자, 난고의 8대손인 유노(1770 ~1814)의 차남으로 살림을 나면서 이 집을 구해 크게 중수하여 살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라 태풍(1959년 9월 17일)시 정침 및 사당이 침수되어 기둥과 벽체, 구들, 마루, 담장 등을 보수하였으며, 그 후 영해 향교 구와(舊瓦)를 이용해 정침을 번와하고, 노후한 서까래 교체, 부엌을 입식으로 개조, 기름보일러 설치, 블록 담장으로 교체, 2004년에 사당 번와 공사, 감실 보수, 토석담장 보수 등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시암고택의 건축 형성시기가 18세기에 초창, 19세기에 중수된 것으로 미루어 현재의 건물은 19세기의 건물로 추정되며 대체로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진만(1697~1773)
남진만(南震萬 ; 1697∼1773)의 자는 형지(亨之), 호는 심안당(審安堂), 본관은 영양이다. 그는 노명(老明)의 손자이고 국시(國蓍)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전주류씨이다. 통덕랑 국신(國藎)에게 출계하였으며, 후비(後妃)는 순천김씨로 병조좌랑 수담(壽聃)의 딸이다. 1726년(영조 2)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양친을 섬기기를 효성을 다하고 상례를 치룸에 유감이 없게 하였다. 친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늘 그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봉양하였다. 장인이 재산을 나누어 그에게 주려하자 받지 않았으며, 류씨 부인이 재산을 나누어 주려고 하자 그는 울면서 "내 아우가 일찍이 홀로 되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까 염려됩니다."라고 하였으며, 여러해 동안 가뭄이 들자 땅을 팔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구원함이 많았으며, 친족들은 장사를 대신 지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이와 같이 재산을 가벼이 하고 의리를 좋아하였으며, 이상정(李象靖)·정훈(鄭塤)·정호(鄭澔) 등과 교유하였다.
http://ugyo.net/et/dict/dict_view.jsp?sActnMode=meta_actn&IDENTIFIER=psn.11454&sFrstCode=psn
에서
남고(南皐, 호는 時庵,1807~1879)
조선 후기의 학자 남고(南皐 ; 1807∼1879)의 초명은 택환(宅煥),자는 중원(仲元), 호는 시암(時庵), 본관은 영양(英陽)이다. 아버지는 유로(有魯)이며, 어머니는 광주안씨(廣州安氏)로 박중(璞重)의 딸이며, 영해(寧海) 사람이다. 송홍익(宋鴻翼)과 류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40년(헌종 6)에 생원시에합격한 뒤 과거를 포기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류치엄(柳致儼)은 \"그의 학문은 정심(整深)하고 해박함은 금세(今世)의 제일이다\"고 했다.
http://erhm.co.kr/bbs/board.php?bo_table=ex_1&wr_id=8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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