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익희의묘 (金益熙의墓)-대전광역시 기념물 제5호문화재/내가 본 시도기념물 2013. 2. 18. 17:15
김익희의묘 (金益熙의墓)-대전광역시 기념물 제5호
종목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5호 명칭
김익희의묘 (金益熙의墓)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수량
29,976㎡ 지정일
1989.03.18 소재지
대전 유성구 과학로 80-141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광산김씨창주공파종중,김달순 설명
조선 후기의 문신인 창주(滄州) 김익희(1610∼1656) 선생의 묘소이다.
인조 11년(1633) 문과에 급제하여 부정자에 등용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판서에까지 올랐다. 1636년에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척화론자로서 청나라와의 평화를 반대하며 남한산성에서 독전어사(督戰御使)로 활약하였다. 선생이 돌아가신 뒤 조정에서는 선생의 관직을 영의정으로 높여주었다.
대전 대덕연구단지내 국립중앙과학관 뒤쪽 야산에 위치한 묘역은 선생과 부인의 묘를 비롯하여 그 일가의 묘역으로 조성되었다. 묘의 왼쪽에는 비석이, 그 앞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세워져 있는데, 글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김진규와 김수증이 쓴 것이다.창주사적공원에는
김익희[金益熙]
1610(광해군 2)~ 1656(효종 7). 조선 후기의 문신.본관은 광산. 자는 중문(仲文), 호는 창주(滄洲). 할아버지는 장생(長生)이고, 아버지는 참판 반(槃)이다. 장유(張維)·정홍명(鄭弘溟)에게서 고문(古文)을 배웠다. 1633년(인조 1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부정자에 등용되고 검열을 거쳐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1635년 수찬·사서(司書)를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척화론자로서 청나라와의 화평을 반대하며, 강화도로 피신하지 못한 인조를 호위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 독전어사(督戰御使)가 되었다. 교리·집의·이조좌랑·사간·부제학·대사성·대사헌을 거쳐 1656년 대제학이 되었다. 1708년(숙종 34) 손자 진옥(鎭玉)이 그의 글을 모아 〈창주유고 滄洲遺稿〉를 간행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문화재 > 내가 본 시도기념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숭현서원지 (崇賢書院址)-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7호 (0) 2013.02.19 단재신채호선생생가지 (丹齋申采浩先生生家址)-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6호 (0) 2013.02.18 박팽년선생유허 (朴彭年先生遺墟)-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호 (0) 2013.02.18 신숭겸장군유적 (申崇謙將軍遺蹟)-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 (0) 2013.02.17 동래읍성지 (東萊邑城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 (0) 201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