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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慶州 高仙寺址 三層石塔)-Three-story Stone Pagoda from Goseonsa Temple Site, Gyeongju-국보 제38호문화재/내가 본 국보 2017. 1. 31. 17:36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慶州 高仙寺址 三層石塔)
국보 제38호
종목 국보 제38호 명칭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慶州 高仙寺址 三層石塔)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 1기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인왕동,국립경주박물관) 시대 통일신라 소유.관리 국유,국립경주박물관 설명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놓은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도 여러 개의 돌이 조립식으로 짜 맞추어져있으나, 3층 몸돌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사리장치를 넣어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배려로, 석탑을 해체·복원하면서 밝혀졌다. 지붕돌은 윗면에 완만한 경사가 흐르는데, 아래로 미끄러지는 네 귀퉁이가 들려있어 경쾌함을 더해주고 있다. 밑면에는 계단 모양으로 5단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통일신라시대 전기인 7세기 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전형적인 석탑양식으로 옮겨지는 초기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이 탑과 함께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에서 시작되어 이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수몰되기전 고선사지의 삼층석탑-문화재청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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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사(高仙寺)
경상북도 경주시 암곡동에 있었던 절.
정확한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원효(元曉)가 머물렀던 절로서, 무열왕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가 이곳에 살 때, 경주 만선북리(萬善北里)에 살고 있던 사복(蛇福)이 찾아와서 “그대와 내가 옛날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죽었으니 함께 가서 장사지내자.”라고 하여 예를 갖추고 장례를 지냈다.
그 때 원효가 “나지를 말지어다, 그 죽음이 괴롭도다. 죽지 말지어다, 그 태어남이 괴롭도다.”라고 하였다. 이에 사복이 시가 너무 번거롭다 하므로, 원효는 다시 “죽는 것도 나는 것도 모두 괴롭구나.”라고 하였다고 한다. 원효 이후 이 절에 관한 신라시대 사료는 전하지 않는다.
고려시대 1021년(현종 12) 현종이 상서좌승 이가도(李可道)에게 명하여 이 절에 있던 금라가사(金羅袈娑)와 불정골(佛頂骨), 창림사(昌林寺)의 불아(佛牙)를 가져오게 하여 내전에 안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이때까지의 규모는 매우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폐사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1913년 절터에서 원효의 행적비인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 단편(斷片)이 일본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이 비는 원효가 686년(신문왕 6) 혈사(穴寺)에서 죽었다는 것을 고증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절터에는 국보 제38호 고선사지삼층석탑과 석등대석(石燈臺石)·귀부(龜趺) 등이 있었지만, 1975년 덕동댐 공사로 수몰지구가 됨에 따라 모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이 가운데 삼층석탑은 2000년 현재 해체 복원공사 중이다. 석등대석은 8잎의 복엽연화문(複葉蓮華文)을 조각하였으며, 길이 90㎝, 높이 38㎝이다.
귀부는 전체 길이가 160㎝이고, 비신을 세우는 자리 주위에는 단엽의 연화문을 새겼으며, 가로 56㎝, 세로 12㎝의 홈을 파서 비신을 세우게 하였다. 일본학자들은 서당화상비가 이 귀부 위에 있었던 것이라고 단언하였지만, 서당화상비는 두께만도 40㎝로서 이 비좌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03693-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주 고선사지 3층석탑 (慶州高仙寺址三層石塔)
통일신라시대 3층석탑.국보 제38호. 높이 9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원래 경상북도 경주시 암곡동 고선사지에 있던 탑인데 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해 1977년 경주박물관으로 이건했다.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규모가 워낙 커서 탑의 여러 부분을 각기 몇 개의 석재로 나누어 가공한 후 결합하는 건축방식이 사용되었다. 석재들이 서로 연결되는 부위에는 I자 모양의 철제은장을 박아 고정했다. 동자주를 하층기단의 중석에는 5개, 상층기단에는 4개 조각했다.
초층옥신의 높이와 너비는 감은사서탑과 동일하지만 옥신의 각면에는 감은사서탑과 달리 문비 모양을 모각했다. 문비 모양의 내부 모서리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는 각면에 금동판 같은 것을 덧씌워 장식하기 위해 못을 박았던 구멍으로 추측된다. 문비 모양의 한 가운데에 새겨진 2개의 원형은 문고리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의 축조연대는 원효(617~686)가 고선사에 주석했다는 사실과 함께 탑의 규모와 형식이 감은사서탑(682)과 비슷한 점으로 미루어 7세기말경으로 추정된다.
목조탑을 석재로 표현한 거대한 크기의 초기 석탑의 하나로서 당당한 균형이 잡힌 모습은 감은사서탑과 함께 통일신라 초기 석탑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우수한 예이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01g3981a-다음백과암곡동 고선사지'문화재 > 내가 본 국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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