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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 (昌原 鳳林寺址 眞鏡大師塔)-Stupa of Buddhist Monk Jingyeong from Bongnimsa Temple Site, Changwon-보물 제362호문화재/내가 본 보물 2013. 2. 7. 21:50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 (昌原 鳳林寺址 眞鏡大師塔)-보물 제362호
종목 보물 제362호 명칭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 (昌原 鳳林寺址 眞鏡大師塔)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 1 기 지정일 1963.01.21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시대 통일신라 소유.관리 국유,국립중앙박물관 설명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진경대사의 사리탑으로, 탑비와 함께 봉림사터에 있던 것을 1919년 경복궁으로 옮긴 것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전형적인 8각 부도이지만 표면의 조각은 적은 편이어서 재료의 빛깔과 아울러 청초한 느낌을 준다.
8각의 바닥돌 위에 있는 기단(基壇)의 아래받침돌 또한 8각으로, 옆면에는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무늬의 바닥선이 불꽃모양으로 솟아올라 시대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가운데받침돌은 북모양으로 중앙의 곳곳에 꽃송이를 새긴 후 이를 도드라진 띠장식으로 연결시켰다. 윗받침돌에는 연꽃 8송이를 조각하였다. 탑신(塔身)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고, 지붕돌은 높고 큰 편으로 처마는 수평을 이루고 있다. 낙수면은 8각의 굵직한 지붕선이 꼭대기에서 아래로 이르렀으나, 끝에 달려있던 꽃장식은 모두 부서졌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와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있는데, 한 돌로 조각하였다.
만들어진 때는 진경대사가 입적한 해인 신라 경명왕 7년(923)으로 추정되는데, 아래받침돌의 안상에서 이미 고려시대의 특색이 보이고 있다. 기단 가운데받침돌이 낮고 작은 것이나 탑신의 몸돌이 가늘고 긴 것에 비해, 지붕돌이 지나치게 커서 비례의 균형을 잃고 있다. 조각수법이 강하지 않고 전체 형태가 길쭉해지는 경향이 나타나는 등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양식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곳곳에서 엿보인다.진경대사(眞鏡大師) 진경대사는 신라 문성왕 17년인 855년에 태어나 경명왕 7년인 923년에 입적하였다. 혜목산(慧目山)의 원감대사(圓鑒大師)로부터 도(道)를 배우고 888(진성여왕2)년 송계(松溪)에서 불법을 전하였다. 김해 진례성(進禮城)에 구산선문의 하나인 봉림사(鳳林寺)를 세우고 도를 말하였는데, 그때 신라 효공왕이 사람을 보내어 법력을 빌어 기원하였다고 한다. 당시 봉림사에는 경질선사 등 500명의 제자가 있었다. 현재 정병산이라 부르는 산 이름도 신라시대에는 복림이라 하였는데, 진경대사가 명주에 있다가 진례산성으로 오니 김해 서쪽에 복림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절터를 물색하여 절을 지었고, 복자를 봉자로 바꾸어 봉림산라 하였다고 한다. 918년 경명왕의 청으로 왕궁에 들어가 국사에 추대되어 법응대사(法膺大師)의 호를 받았다. 923년 봉림사에서 70세로 입적하였으며, 경명왕은 진경대사(眞鏡大師)란 시호를 내리고, 탑호(塔號)를 보월능공(寶月凌空)이라 하명하였다. 이곳에 있던 진경대사탑은 1919년 경복궁으로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문화재 > 내가 본 보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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