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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로에서 본 흔적들
    문화재/내가 본 기타문화재 2016. 9. 28. 13:57

    종로에서 본 흔적들


    독립협회 창립총회 터





    독립협회

    獨立協會

    시대 근대
    설립 1896년 7월 2일
    성격 사회정치단체
    유형 단체
    설립자 서재필(徐載弼)
    분야 역사/근대사

      1896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정치단체. 1896년 7월부터 1898년 12월에 걸쳐 열강에 의한 국권 침탈과 지배층에 의한 민권 유린의 상황 속에서, 자주국권·자유민권·자강개혁사상에 의해 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운동을 전개한,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정치단체이다.


    [의의와 평가]

    그러나 19세기말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세력균형이 이루어졌던 시기에, 자주국권·자유민권·자강개혁의 사상을 가지고 독립협회가 추진한 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운동은, 그 뒤 일제의 주권침탈과 식민통치과정에서 항일독립운동과 국민국가수립운동 등 한국민족운동의 내적 추진력이 되었다.


    옛 천도교 중앙총부 터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76XX41800012


    손병희 선생 집터




    손병희[소소거사(笑笑居士), 의암(義菴) 다른 표기 언어 孫秉熙]

    시대 근대
    출생일 1861년
    사망일 1922년
    유형 인물
    직업 지도자, 독립운동가
    성별
    분야 역사/근대사
    본관 밀양(密陽)

    1861(철종 12)∼1922. 동학·천도교지도자, 독립운동가, 교육사업가.


    이상재 집터





    이상재[계호(季皓), 월남(月南) 李商在 ]

     

    시대

    근대
    출생일 1850년(철종 1)
    사망일 1927년
    경력 친군영 문안, 주미공사 2등서기관, 의정부참찬, 조선일보사 사장, 신간회 창립회장
    유형 인물
    직업 독립운동가, 국가유공자, 사회운동가
    대표작 청년이여, 진평화, 독립문건설소
    성별
    분야 역사/근대사
    본관 한산(韓山: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1850(철종 1)∼1927. 독립운동가·정치가·민권운동가·청년운동가.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계호(季皜), 호는 월남(月南). 충청남도 서천 출신. 아버지는 이희택(李羲宅)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한성도서주식회사 터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  

    시대 근대
    설립 1920년
    성격 출판사
    유형 단체
    설립자 장도빈(張道斌)
    분야 언론·출판/출판

    1920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출판사.


    장도빈(張道斌)이 중심이 되어 창설하였다. 주로 서북지역 출신의 젊은 인사들이 모여 자본금 30만 원으로 주식회사를 만들어 출발하였는데, 간부로는 사장에 이봉하(李鳳夏), 전무에 이종준(李鍾駿), 취체역에 한규상(韓奎相)·장도빈·박태련(朴泰鍊), 감사역에 한윤호(韓潤鎬)·허헌(許憲) 등이었고, 고문으로는 김윤식(金允植)·양기탁(梁起鐸)을 추대하였다.

    이 밖에 출판부장 장도빈은 월간 언론잡지 ≪서울≫의 주간을 겸하였으며, ≪학생계≫ 주간은 오천석(吳天錫)이 맡았으나 그가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는 최팔룡(崔八龍)이 맡았다.

    “우리의 진보와 문화의 증장(增長)을 위하여 시종 노력하기를 자임하노라.”라고 선언하고 출발한 이 회사는, 당초 일간신문의 발간을 계획하였으나 허가를 얻지 못하자 일반 도서출판과 잡지발행으로 목적을 바꾸었다.

    초창기에는 정연규(鄭然圭)의 ≪이상촌 理想村≫을 비롯한 번역물 ≪데모스테네스≫·≪짠딱크≫·≪로쏘≫ 등을 출판하였고, 이어 ≪조선대지도≫, 이필수(李弼秀)의 ≪선문통해≫, 톨스토이의 ≪나의 참회≫, 강매(姜邁)의 ≪잘 뽑은 조선말과 글의 본≫을 출간하였다.

    1927년부터는 최남선(崔南善)의 ≪백두산근참기 白頭山覲參記≫·≪금강예찬≫·≪시조유취≫ 등을 발간하여 민족고유의 말과 글, 자연을 통한 민족정신 고취에 힘썼다.

    1925년 이후부터는 시집과 소설을 출판하기 시작하였는데, 김동환(金東煥)의 ≪국경의 밤≫을 비롯하여 여류시인 김명순(金明淳)의 ≪생명의 과실≫, 김억(金億)의 ≪안서시집 岸曙詩集≫, 한용운(韓龍雲)의 ≪님의 침묵≫, 김희규(金禧圭)의 ≪님의 심금≫, 이응수(李應洙) 번역의 ≪김삿갓시집 金笠詩集≫ 등 많은 시집을 내놓았다.

    또한, 소설 분야에서는 노자영(盧子泳)의 ≪영원의 몽상≫·≪처녀의 화환≫·≪표백의 비탄≫ 등을 비롯하여 오천석 번역의 ≪세계문학걸작집≫을 간행하였고, 이어 김동인(金東仁)·이광수(李光洙)·심훈(沈熏) 등의 작품을 통틀어 실은 ≪현대장편소설전집 現代長篇小說全集≫ 등을 1936∼1938년 사이에 발간하여 민족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출판물들은 일본군국주의의 우리말 말살정책에 대한 민족적 반발 때문에 많은 부수가 팔리기도 했는데, 특히 간도를 비롯한 해외 교포들의 주문이 두드러지게 많았다. 그리하여 1944년에는 창립 이래 최초로 주주에 대한 이익금 배당까지 하였다.

    이렇게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민족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는 중요한 소임을 맡아 사명을 이룩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하였던 이 회사의 존재가치는 크게 평가할 만하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61727


    충훈부 터



    충훈부[忠勳府]

    시대 조선
    성격 관청
    유형 제도
    시행일 1466년(세조 12)
    폐지일 1894년(고종 31)
    분야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공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던 관서.

    맹부(盟府)·운대(雲臺)라고도 하였다. 본래 공신도감(功臣都監)·충훈사(忠勳司) 등으로 불리다가 세조 때 사(司)를 부(府)로 승격시켰다.

    공신도감은 1392년(태조 1) 8월 태조 때 설치되어 개국공신(開國功臣)에게 영작(榮爵)과 토지·노비 등을 주고 그 자손들에게도 영예와 음덕이 돌아가게 하였다.

    1405년(태종 5) 공신도감을 이조에 소속시키고, 1414년 관제를 고쳐서 녹사(錄事)를 승(丞), 부녹사(副錄事)를 녹사로 하고, 1417년 처음으로 공신도감에 유사(有司)를 두어 이보다 상위직으로 사(使)·부사(副使)를 두었다.

    1434년(세종 16) 공신도감을 고쳐 충훈사로 개칭하고, 관원도 사를 지사(知事)로, 부사를 도사(都事)로 삼되 모두 구전(口傳)으로 하여 참외(參外)는 승·녹사의 이름을 그대로 두었다.

    한편, 충훈사는 대군과 부원군의 아문이기도 하므로 1466년(세조 12) 부마부의 예에 따라 충훈부로 승격시켰다.『경국대전』에 의하면 당상관인 군(君)은 종2품부터 정1품까지 임명되었으며, 조관(朝官)으로는 경력·도사 각 1인이 있었으나 영조 때 편찬된『속대전』에는 경력을 폐지시켜 도사만이 남았다.

    원래 당상관에는 정원이 없었으나 정조 때 편찬된 『대전통편』에는 3인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의 친공신(親功臣)이 3인 밖에 없어서인 것 같고, 또한 현직에 있는 자를 상주(上奏)하여 임명하되 친공신이 없으면 승습(承襲)한 자손을 군으로 임명하였고, 도사는 군신의 자손을 등용하였다. 1894년(고종 31) 기공국(記工局)으로 개칭, 의정부에 소속시켰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8265








    종친부 이승당 터




    친부는 최고 王族들의 사무를 처리하던 敬近堂, 고위 관리들의 집무처인 玉牒堂,

    하급 浪人들의 집무처 이승당으로 이루어졌으나 경근당과 옥첩당 만 남아있다.


    화기도감터




    光海君 6(1614) 화기도감으로 개편하고 1615 4 1차 업무를 마친 뒤 별다른

    역할이 없다가, 1904년 행정제도 개편에 따라 軍器廠으로 개칭되었다.


    성삼문 선생 살던 곳





    중등교육 발상지





    이 터는 중등교육의 발상지로 1900년 高宗皇帝의 勅令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中等學校로

     건립된 京畿高等學校가 있던 자리이다.


    *1900년 官立中學校로 개교하여 1906년 官立漢城高等學校로 교명을 바꾸고, 1911

      京城高等普通學校, 1921년 京城第一高等普通學校, 1938년 京畿公立中學校로 교명을

     변경하고, 1951년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진단학회[震檀學會]

    시대 근대
    설립 1934년 5월 7일
    성격 학술단체
    유형 단체
    설립자 이병도 등
    대표자 권두환
    분야 역사/근대사

    1934년 한국 및 인근지역 문화의 연구를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


    1934년 한국인 학자들이 조선총독부 또는 일본인 학자들이 주도하는 관변적 연구풍토에서 벗어나 한국 및 인근지역의 문화를 독자적인 연구풍토를 구축하기 위해 만든 학회로서, 이들 중 일부는 일제의 식민사관과 관변적 학풍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 현재까지 대학 강단을 중심으로 넓은 인맥을 유지하고 그 학술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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