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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 사직단 (社稷壇)-사적 제121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2. 2. 09:52
사직단 (社稷壇)-사적 제121호
종목 사적 제121호 명칭 사직단 (社稷壇)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제사유적/ 제사터 수량 5,973.6㎡ 지정일 1963.01.21 소재지 서울 종로구 사직동 1-28 시대 조선시대 소유 국유 관리 문화재청 설명 종묘와 함께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가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지을 때 함께 만들었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였으며, 신좌는 각각 북쪽에 모셨다.
제사는 2월과 8월 그리고 동지와 섣달 그믐에 지냈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그리고 풍년을 비는 기곡제들을 이 곳에서 지냈다.
1902년 사직단과 사직단의 임무를 맡는 사직서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사직을 끊고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사직단의 격을 낮추고 공원으로 삼았다. 1940년 정식으로 공원이 된 사직공원이 옛 사직단의 자리이다.
※(서울사직단 → 사직단)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국토의 주인인 사(社)와 오곡의 우두머리인 직(稷)의 두 신위(神位)에 제사드리는 곳.
사적 제121호. 이곳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으므로 사직단이라고 한다. 보통 도성의 서쪽에 위치한다. 사단(社壇)은 동쪽, 직단(稷壇)을 서쪽에 설치한다. 국토와 오곡은 국가와 민생의 근본이 되므로 고대에는 국가와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고 보호해주는 데 대한 보답의 의미에서 사직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다. 따라서 사직은 왕실의 조상들을 제사 지내는 종묘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시되어, 국가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우리나라에서 사직단이 설치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인 것으로 기록에서 확인되고 있다. 고려 시대에도 991년(성종 10)에 사직을 세웠는데, 1014년에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수축되었다. 조선 왕조가 들어선 1393년(태조 2)에는 한양 천도와 관련된 종묘·사직의 지형도를 만들었다. 그 이듬해에 사직의 터를 잡았는데, 경복궁 서쪽의 인달방(仁達坊)으로 정했다. 1395년 사직단의 축조공사가 시작되어 단의 설치가 완성된 이후 담장을 둘렀으며, 담장 안에는 신실(神室)과 신문(神門)을 세웠다. 1474년에 간행된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사직단은 정4각형의 평면으로서 한 변의 길이는 2장 5척 즉 25척, 높이는 3척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단의 사방 중앙에는 3층의 섬돌이 설치되어 있으며, 사단과 직단 사이의 간격은 5척으로 되어 있다.사직단에서는 중춘(仲春)·중추(仲秋)·납일(臘日:동지 뒤의 셋째 成日)이 되면 국가와 민생의 안전을 기원하는 대향사(大享祀)를 지냈으며, 정월에는 기곡제(祈穀祭)를, 가뭄 때에는 기우제(祈雨祭)를 각각 행했다. 이러한 각종의 제례와 관리를 위해 1426년(세종 8)에는 사직서(社稷署)를 담장 밖 북쪽에 설치했다. 그리하여 1908년 칙령에 의해서 폐지될 때까지 사직단에서 국가제사가 계속되었다.그런데 임진왜란의 병화로 인하여 사직단은 담만 남고 나머지 부속물은 거의 파괴되어 사직과 종묘의 신주를 함께 옮기기도 했다. 병자호란 때는 강화도로 옮겨진 바 있다. 1897년 10월 조선왕조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원구단(圜丘壇)에서 천지제를 행한 후 황제위(皇帝位)로 나아간 고종은 사직단의 지위도 올려 태사(太祀)·태직(太稷)으로 고쳤다. 그러나 사직단은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하여 강점됨에 따라 그 기능을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대신 일제는 사직단 일원을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와 관련된 부속건물들을 철거했을 뿐 아니라 일부는 학교부지로도 분할되었다. 1960년대에는 도시계획사업으로 인하여 그 부지의 축소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1970년대에는 도서관·수영장·동사무소·파출소 등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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