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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2대 국회의장이었던 해공신익희가옥 (海公 申翼熙 家屋)-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3호
    문화재/내가 본 시도기념물 2013. 2. 1. 15:07

    해공신익희가옥 (海公 申翼熙 家屋)-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3호

     

     

    종목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3호

    명칭

    해공신익희가옥 (海公 申翼熙 家屋)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

    건물 2동(-안채 60.2㎡, 사랑채 31.1㎡)

    지정일

    2005.02.11

    소재지

    서울 종로구 효자동 164-2

    시대

    기타

    소유.관리

    (사)해공신익희선생기념회

    설명

    이 집은 독립운동가로서 해방 후 초대 국회의장을 역임한 해공 신익희 선생(1894 ~1956)이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난 1954년 8월부터 1956년 5월 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호남 지역 유세를 위해 전주로 내려가던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1년 9개월 여 거주한 곳이다.

    ‘ㄱ'자형 안채와 사랑채 2동으로 구성 된이 집은 집장수들이 조선시대 양반가의 집을 모방하여 1930년대에 지은 도시형 한옥으로 겹처마 팔작지붕 오량가(五樑架) 집이다. 겹처마이면서도 처마를 짧게 내어 채광을 고려하고, 굴도리를 사용하였으며, 건물 규모에 비해 단면이 과대한 대들보를 사용하여 오량가(五樑架)로 가구(架構)한 점 등에서 이 시대 도시형 한옥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집의 외벽과 내벽, 창호 등은 해공 신익희 선생 거주 이후로 입주자의 편의에 따라 일부 변형되었으나 건물의 구조는 건립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건물의 변형된 부분들 그 자체도 도시형 한옥의 변천사를 알 수 있게 하는 건축 사적 자료가 된다.

    해공 신익희 선생은 1945년 해방 이후 중국에서의 오랜 독립항쟁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와 한미호텔 → 창신동 조씨가 → 종로 6가 낙산장 → 묘동 장씨가 → 삼청동 106번지(오늘날 국무총리 공관)→ 효자동 164-2 등에서 거주했다. 이 중 효자동 164-2는 해공 신익희 선생이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나 민주당을 창당하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당시 사사오입 개헌 등을 통해 장기집권과 독재체제 강화를 시도하던 이승만 전(前)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에 대항하는 등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으로 요약되는 그의 정치인생이 정점에 이른 시기에 거주하며 활동하던 곳으로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이다.


    이 집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신익희(, 1894~1956)가 1954년 8월부터 1956년 5월까지 거주한 곳이다. 그의 유품으로는 목판, 고서, 휘호(친필), 놀이용 화살 등이 보존되어 있다. 가옥은 원래 현재의 장소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865년(고종 2)에 대홍수로 가옥 일부가 파손되어 지금의 위치에 옮겨 세운 것이다. 건축물 대장에는 1925년에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목조 와가로 겹처마, 팔작지붕, 오량가 집이다. 안채는 면적 60.2㎡이며 평면은 T자형이다. 중앙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안방, 왼쪽에 건넌방을 두었고 안방 앞에 부엌을 배치하였다. 사랑채는 면적 31.1㎡의 ㄱ자형으로, 가운데에 대문을 두고 왼쪽에 2칸 규모의 사랑방을 두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생가는 광주에
     
     이 집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신익희(, 1894~1956)가 1954년 8월부터 1956년 5월까지 거주한 곳이다. 그의 유품으로는 목판, 고서, 휘호(친필), 놀이용 화살 등이 보존되어 있다. 가옥은 원래 현재의 장소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865년(고종 2)에 대홍수로 가옥 일부가 파손되어 지금의 위치에 옮겨 세운 것이다. 건축물 대장에는 1925년에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목조 와가로 겹처마, 팔작지붕, 오량가 집이다. 안채는 면적 60.2㎡이며 평면은 T자형이다. 중앙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안방, 왼쪽에 건넌방을 두었고 안방 앞에 부엌을 배치하였다. 사랑채는 면적 31.1㎡의 ㄱ자형으로, 가운데에 대문을 두고 왼쪽에 2칸 규모의 사랑방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19세기 또는 20세기 초 경기 지역의 도시형 한옥 형태를 취하고 있다. 집의 외벽과 내벽, 창호 등은 일부 변형되었으나 건물 구조는 건축 당시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2005년 2월 11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으며 해공신익희선생기념회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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