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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냉수리 신라비 (浦項 冷水里 新羅碑)-Sillabi Monument in Naengsu-ri, Pohang-국보 제264호문화재/내가 본 국보 2016. 1. 2. 21:25
포항 냉수리 신라비 (浦項 冷水里 新羅碑)
-국보 제264호
종목 국보 제264호 명칭 포항 냉수리 신라비
(浦項 冷水里 新羅碑)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 1기 지정일 1991.03.15 소재지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토성리 342-1번지 신광면사무소 시대 신라 소유.관리 국유,포항시 설명
이 비는 1989년 마을주민이 밭갈이를 하던 중 발견하였으며, 재산분배를 확인하는 증명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형태는 네모난 자연석으로 밑부분이 넓고 위가 줄어드는 모습이며, 앞면과 뒷면, 그리고 윗면의 3면에 글자를 새겼다. 비문은 거의 닳지 않아 눈으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다. 글자는 총 231자이고 서체는 해서체로 보이나, 예서체의 기풍이 많이 남아 있어 비문의 형태와 글씨체면에서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 울진봉평신라비(국보 제242호)와 매우 비슷하다.
비문은 절거리(節居利)라는 인물의 재산소유와 유산상속문제를 결정한 사실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 공문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각 부의 여러 귀족들이 참여하여 재산권 분쟁을 처리하고 있는데, 이는 왕권을 강화하기 이전에 미약했던 신라왕권의 한계를 알려주고 있다. 또한 소를 잡아 하늘의 뜻을 묻고 제천의식을 행하던 당시 풍속제도의 실상이 잘 담겨져 있다.
내용중 ‘계미(癸未)’라는 간지(干支)와 ‘지도로갈문왕’등의 칭호가 나오고 있어 신라 지증왕 4년(503)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에서 세운 비로서 신라의 왕명을 다룬 초기 율령체제의 형태를 보여주어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신라역사 연구와 금석학 연구에도 중요한 유물이다.안내문의 국보 명칭 수정이 필요하다.
0여년전인 1989년에 자기 밭에서 ‘냉수리비’를 찾아냈던 발견자는 신광면 냉수리에 살던 이모씨였다. 그는 1988년에 ‘봉평비’가 울진군 죽변면 봉평 2리의 논 가운데에 묻혀 있다가 우연히 발견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자기 밭에도 종종 쟁기에 걸려 애를 먹이는 돌이 있다는 부친의 이야기가 떠올라 쇠꼬챙이를 만들어 밭을 찔러가며 조사하다가 비석을 발견했다고 한다. 밭에서 캐낸 비석을 집으로 옮긴 발견자는 화선지에 비면의 글자를 옮겨 그린 후, 그것을 들고 대구 지역 연구자들에게 비석의 금전적 가치를 문의하며 다녔다고 한다. 문화재보호법의 엄중함을 알지 못하고 비석을 매매가 가능한 물건으로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여곡절 끝에 ‘냉수리비’는 대구의 모 학술재단에 알려졌고 문화재 당국에 신고가 이루어져 결국 국보 제264호로 지정되었다. 이 비석은 베일에 싸여 있던 6세기 초 신라의 역사를 밝혀주는 등대가 되고 있다.
[출처] <1> 포항 냉수리-중성리 신라비|작성자 대구일보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aeguilbo&logNo=40156616888
발견된곳
복제품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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