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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숭렬당 (永川 崇烈堂)-보물 제521호문화재/내가 본 보물 2015. 12. 31. 11:43
영천 숭렬당 (永川 崇烈堂)
보물 제521호
종목
보물 제521호 명칭
영천 숭렬당 (永川 崇烈堂)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
1동
지정일
1970.07.23
소재지
경북 영천시 숭렬당길 1 (성내동)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이수채외13명,영천이씨문중
설명
조선 세종 때 대마도와 여진 정벌에 공을 세운 이순몽 장군의 집으로 세종 15년(1433)에 중국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1970년 문화재로 지정된 뒤 복원공사를 한 건물로 지금은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으로 쓰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인데 그 양쪽 끝 칸에 날개를 단 듯 지붕을 덧달았다. 따라서 전체로 보면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모양은 맞배지붕이 팔작지붕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이고 있는 지붕 형식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는 새부리 모양으로 뻗쳐 나왔다. 평면은 가운데 3칸보다 양쪽 끝 칸이 한 자씩 좁으며 건물 안쪽의 천장은 가구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미고 있다.
구조가 조선 전기의 수법을 보이고 있지만 일부 재료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들이 조선 후기의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조사결과 몇 차례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대체로 검소하고 건실하게 지은 집이다.이순몽(
1386(우왕 12)∼1449(세종 31). 조선 전기의 무신.본관은 영천(永川). 아버지는 응(應)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全州崔氏)로 판서 병례(丙禮)의 딸이다. 1405년(태종 5) 음직(蔭職)으로 벼슬에 올라 1417년 무과에 급제, 1418년 의용위절제사(義勇衛節制使)·동지총제가 되었고 1419년(세종 1) 우군절제사에 임명되었다. 그 뒤 경상좌도병마절제사·중군도총제·좌군도총제·충청도병마도절제사·삼군도진무(三軍都鎭撫)·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등을 역임하였다.1419년 우군절제사로 이종무(李從茂)·우박(禹博)·박초(朴礎) 등과 함께 대마도 정벌에 나서 여러 장수들은 모두 패하였으나 그는 김효성(金孝誠)과 함께 대전과를 거두어 대마도주 도도웅이(都都熊耳)가 항복하고 수호를 요청하였다.1425년 진하사(陳賀使)로 중국에 들어가 선종(宣宗)이 즉위함을 축하하였다. 1433년 중군절제사가 되어 파저강(婆猪江)의 야인인 이만주(李滿住)를 토벌하여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자 세종은 노비와 의화(衣靴)를 내려주었고 총애가 극진하였다.1434년 경상도도절제사, 1447년 영중추원사를 지냈다. 영천의 삼현사(三賢祠)와 숭렬당(崇烈堂)에 봉향되었다. 시호는 위양(威襄)이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4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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