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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장군 유적 (申瀏將軍 遺蹟)-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문화재/내가 본 시도기념물 2015. 10. 31. 17:41
신유장군 유적 (申瀏將軍 遺蹟)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
명칭
신유장군 유적 (申瀏將軍 遺蹟)
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순절지 수량
22,907㎡
지정일
1982.08.04 소재지
경북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산21번지 외 16필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평산신씨종중
설명
조선 중기의 무신 신유(1619∼1680)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신유는 인조 24년(1646)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함경북도 병마우후로 있을 때 중국 청나라의 부탁으로 효종 9년(1658) 군대를 이끌고 흑룡강 부근에서 러시아 군대의 배 10척과 270여 명의 군사를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나선정벌이라 하며 장군은 이 원정의 내용을 『북정일기』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다.
『북정일기』는 우리나라와 러시아간에 최초의 접촉으로 현지 사령관이 쓴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사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나선 정벌 [羅禪征伐]
[역사] 조선 시대, 1654(효종 5)년과 1658(효종 9)년의 두 차례에 걸쳐 중국 청(淸)나라를 도와 러시아를 친 싸움. 당시 이 싸움에서 우리 군사는 헤이룽 강(黑龍江)까지 진출하였다.
나선은 러시안(Russian)을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러시아는 13세기 이후 몽골족의 지배하에 있다가 15세기 후반에 몽고족을 몰아내고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17세기 전반에는 헤이룽 강[黑龍江]유역까지 진출하였다.
1651년(효종 2)에 헤이룽 강의 우안에 알바진(Albazin) 성을 쌓아 군사 기지로 삼고, 다음해 우수리 강[鳥蘇里江]하구에 새로 성을 쌓으려 하여 청나라와 충돌이 자주 일어났다. 이에 청의 영고탑 도통이 2,000명의 병력으로 러시아군을 공격했으나 총포를 가진 러시아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 뒤 러시아가 헤이룽 강의 지류인 송화강유역까지 진출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물자를 약탈하자, 청나라는 그곳의 러시아인을 토벌하기 위해 조선에게 원병으로 조총수들을 요청하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효종이 즉위하고 있었는데, 그는 2번의 호란을 격은 뒤 심양에인질로 8년간이나 체류하며 고초를 겪었으므로 반청사상이 강하였다. 따라서 주자학 입장에서 반청사상을 갖고 있던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등을 등용시켜 북벌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나라에게 출병을 요구받았던 것이다.
1654년(효종 5) 1월 청나라 차관 한거원이 조총수 100명을 선발하여 3월 10일까지 영고탑에 도착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계문을 전달했다. 이에 조선병은 함북우후 변급의 인솔하에 1654년 3월 26일에 출발하여 두만강을 건너 4월 16일 청병 3,000명과 영고탑에서 합세해서 27일에 후통강에 이르러 28일과 29일에 러시아군과 접전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전승을 거두고, 5월초 주위 5리의 토성을 쌓아 놓고 16일에 회군하여 6월 13일에 영고탑을에 들어와서 귀국하였다. 그뒤에도 청나라는 러시아와 헤이룽 강방면에서 전투를 계속하며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다시 조선원병을 요구하였다.
1658년 2월 19일자의 청황제 칙서를 보내옴에 따라 조선에서는 함북병마우후 신류를 통병관으로 하여 조총수 200명과 초관·기고수·화정 60명을 인솔하고 3개월분의 군령을 가지고 그해 5월 초에 영고탑으로 향하게 했다. 조선군은 6월 5일에 승선하여 송화강의 본류로 나아가 6월 10일에는 멀리 헤이룽 강 합류점까지 이르러 러시아의 지휘관 스테파노프(Stepanov) 선대와 만난 격전을 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8명의 전사자와 25명의 부상자가 났으나, 조총수의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스테파노프를 비롯한 러시아군 대부분을 섬멸시켰다. 전투직후 청의 요청에 따라 송화강 방면에 머무르다가, 그해 11월 18일 영고탑을 떠나서 12월 12일에 회령에 귀환했다.
두차례에 걸친 조선군의 러시아 정벌은 청의 요구에 따른 처사이기는 하였지만, 북벌을 위해 준비했던 병력을 간접적으로 과시해보인 결과가 되었다. 이는 조선의 조총수가 멀리헤이룽 강 유역까지 진출하여 그 위력을 발휘하였다는 것과, 조선군이 러시아군과 역사상 처음으로 교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던 사실은 특기할 일이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03n2588a
북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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