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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장량상 동정마애비 (南海張良相東征磨崖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호문화재/내가 본 시도유형문화재 2015. 8. 11. 19:22
남해 장량상 동정마애비 (南海張良相東征磨崖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호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호
명칭
남해 장량상 동정마애비 (南海張良相東征磨崖碑)
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
1기
지정일
1972.02.12
소재지
경남 남해군 남해읍 선소리 169-9번지
시대
소유.관리
남해군 설명
선소마을 선착장의 오른쪽 해변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중국 명나라 장수인 장량상이 동쪽을 정벌하고 바위에 글을 새겼다 하여 ‘장량상동정마애비’라 이름붙인 것이다.
비의 형태는 커다란 자연석의 윗면을 직사각형으로 평평하게 갈아 글을 새겼다. 직사각형의 테 주변에는 덩굴무늬를 아름답고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비문은 이여송과 진린이 원군으로 조선의 남해에 와서 왜군을 무찔렀다는 내용으로, 명나라 군인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전승기념비적 성격을 띠고 있다. 역사적 자료에는 선소마을에서 명의 수군과 왜군이 싸웠다는 기록이 없어 비문의 내용이 의심스럽지만, 노량해전 직후나 그 이듬해인 선조 32년(1599)에 이 글을 새겨 놓은 것으로 추측된다.
남해지방과 관계있는 비는 아니지만, 역사에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명나라 장수의 마애비라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명나라 이여송과 진린이 왜군을 무찔렀다는 전승내용이 많이 기록되어 있어 일제 시대 당시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파괴대상 왜구격파 기념비’목록에 이 비가 포함되었었다 한다.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는 선조 31년(1598)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일본 패잔병500여명은 관음포를 통하여 육지로 올라와 일본군이 주둔하였던 선소왜성으로 갔으나 왜성에 주둔군이 없자 패잔병들은 주민들의 선박을 탈취하여 일본으로 도주한 후 명나라군은 이곳에 도착하여 왜군을 찾으니 이미 떠나고 없으므로 다음해인 선조 32년(1599)에 왜성 아래에 있는 자연암(自然岩)에다 유격대장(遊擊大將) 장량상(張良相)이 각자(刻字)한 것이다. 내용은 명나라 황제의 명에 의해 제독 이여송(提督李如松)과 수군도독 진린(水軍都督陳璘)이 남해까지 와서 왜군(倭軍)을 무찔렀다는 명(明)나라의 위대함을 암각(岩刻)한 전승시비(戰勝詩碑)로 12행(行) 종서(縱書)로 된 마애비(磨崖碑)이다. 주록(周綠)에는 당초문(唐草文)으로 띄를 돌려 새겼다. 비문 말미에 “만력(萬曆) 26년(二十六年) 계추(季秋) 국가복유(國家復有) 간동제(干東弟) 유시(維時) 조선수왜환지시(朝鮮受倭患至是) 육칠년의(六七年矣) 아사구지(我師救之) 황명(皇明) 만력(萬曆) 27년(二十七年) 양월상완길조일건”(陽月上浣吉兆日建)”으로 새겨져있다.
萬曆二十六年季秋國家復有事干東夷維時朝鮮受倭患之七年矣我師求之後未報捷 天子赫然震怒乃命中丞萬公往視師經理與總督大司馬刑公都督陳公以下文武將臣十餘人兵會於朝鮮先後濟鴨綠江數道竝進惟公將志鷹楊英風虎視曁于群公岡不協乃心力竭厥忠謨將輘樂浪喩鷄林師於釜山封黥鯢而返太使氏區大相以爲從古帝王出師命將咸有言以壯軍客宣國威伸同仇之誼軫於役之勞矧夫以天王之師征誅夷狄芟除暴亂算出萬全巳在必克順治威嚴于慈爲盛宜昭示遠腹永詔來䆊於是作詩二章踓之孔碩之雅庶揚有威之爾. 其詞曰
만력 26년(1598) 늦가을에 나라의 동쪽에 다시 일이 있게 되었다. 때는 마침 조선이 왜놈들의 침입을 받아 7년에 이르렀다. 우리는 군사를 보내어 이들을 구원하였으나 아직도 이겼다는 보고가 없다. 천자께서는 벌컥 성을 내시어 곧 내각의 여러 고관들에게 가서 군사들을 살펴보라고 명하시었다.
경리(經理)와 총독(總督)을 겸한 대사마(大司馬) 형공(邢公. 명나라 장수 형개[邢玠])과 도독 진공(陳公. 명 수군제독 진린) 이하 문무 장신(將臣) 십 여인들이 조선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만나기로 하여 다투어 압록강을 건너 두어 갈래의 길로 함께 진군하게 하셨다.
생각하건대 형공과 진공은 웅대한 자략으로 세력을 신장하여 아름다운 기풍을 삼고 범이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듯이 하면서 여러 장수들과 협조하여 심력을 다 기우려 충성스런 지모로 낙랑(樂浪. 지금의 평양)을 거쳐 계림(鷄林. 경주시)을 지나 부산으로 나아가 군사력을 떨쳐 왜놈들을 봉쇄한 뒤에 돌려보냈다. 태사씨(太史氏) 구대상(區大相. 명나라 문신)은 예로부터 제왕들은 군사를 내어 전쟁을 하면, 모두 씩씩한 군대의 위용으로써 국위를 떨치고 동시에 수고로이 원수를 물리친 것을 칭송하는 말이 있었다고 하였다.
이에 저 명나라와 조선의 군사들은 섬 오랑캐를 물리쳐 폭동과 반란을 제거하고 만전을 꾀하였다. 모든 일은 반드시 싸워 이겨 여기에서 순리로 다스려 위엄이 이처럼 성하니 멀리 와서 정복하여 물리친 것을 밝혀 보이어 길이 알린다.
이에 시 2장을 지었으니 비록 공석(孔碩)이 지은 것이지만, 거의 위엄을 드날리기에는 충분하다고 하겠다.당초문
참고 :
中 인민일보 취재진, 경남 남해군 방문[http://media.daum.net/press/newsview?newsid=20150212113818184]
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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