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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송오체정 (靑松五체亭)-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8호
    문화재/내가 본 문화재자료 2014. 11. 12. 12:11

    청송오체정 (靑松五체亭)-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8호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8호

    명칭

    청송오체정 (靑松五체亭)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

    1 동

    지정일

    2002.08.19

    소재지

    경북 청송군 현동면 개일월매길 46 (개일리)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영양남씨거성문중(남윤진)

    설명

    이 건물은 영양 남씨 청송 입향조 운강공 남계조雲岡公 南繼曺 선생의 현손玄孫

    5형제인 자훈自熏, 응훈應熏, 유훈有熏, 필훈必熏, 시훈是熏의 뛰어난 효행과 우애를

    추모하기 위하여 자훈의 손자 남도성南道聖이 여러 종인宗人들과 의논하여

    1774년 무렵에 건립한 정자로 알려져 있다.

    오체정의 ‘오체五棣’는 시경詩經 체화시棣華詩에 나오는 말인데

    여기서는 5형제인 자훈, 응훈, 유훈, 필훈, 시훈을 뜻한다.

    이 건물은 정자 1동과 관리사 1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자 형태이다
     

     

     
     

     

               

     

     

     

     

     

     

     

     

     

     

     

     

     

     

     

     

     

     

     

     

     

     

     

     

     

     

     

     

     

     

     

     

     

     

     

     

     

     

     

     

     

     

     

     

     

     

     

     

     

     

     

     

     

     

     

     

     

     

    남계조(南繼曺, 1541~1621)

    는 본관이 영양(英陽)이고 자는 선술(善述)이며 호는 운강(雲岡)이다. 할아버지는 남찬(南讚)으로, 교위(校尉) 남현범(南賢範)의 아들로 선조(宣祖) 때 부사과(副司課)를 지냈다. 아버지 근재(謹齋) 남억령(南億齡)은 참봉(參奉)을 지냈다.
    남계조는 어릴 때부터 모습이 빼어났고 글재주가 뛰어났다. 8살에 시를 지으니 아버지가 “우리집 문종(文種)이 끊어지지 않았다”하고 크게 되기를 기대하였다. 1554년 13세에 부친상을 당했는데, 어른처럼 엄숙하게 상례를 치러서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퇴계(退溪)의 문인인 비지(賁趾) 남치리(南致利)와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의 문인인 남정방(南靖邦) 두 선생에게서 수학하였다. 학문과 행실이 빼어나서 수월(沙月) 조검(趙儉)과 사월(沙月) 조임(趙任) 등이 그를 흠모하고 공경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맏형인 남윤조(南胤曹)가 화왕산성(火旺山城) 의진(義陣)에 참가하자, 남계조는 모친을 모시고 안덕면 장전리에 피난했다. 그러나 남윤조가 화왕산 의진에서 전사하였다. 남계조는 형의 시신을 찾지 못하자 통곡하면서 초혼사(招魂辭)를 짓고, 형을 부친의 곁에 장사지냈다. 이 일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 “형은 나라를 위하여 충성(忠誠)을 하고, 동생은 어버이를 효로 섬기어 가히 효와 충을 둘 다 온전하게 하였다”고 집안 형제를 칭송했다. 또한 관찰사(觀察使) 김수(金晬)가 남계조를 충효가 뛰어나다고 천거하여, 그는 통정대부호군(通政大夫護軍)에 제수되었다.

     

    남세주
    남세주는 본관이 영양이고 호가 성재(誠齋)로, 운강(雲岡) 남계조(南繼曺)의 증손자로 태어났다. 그는 영남 사림의 일원으로 주자학과 퇴계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자신을 수양한 참된 선비였다. 자녀들의 가정교육에도 엄밀하여, 그는 5명의 아들을 효성과 우애가 돈독한 어진 인재로 키워내었다.

     

     

    남자훈
    자는 순화(舜和)이며 호는 낙유헌(樂幽軒)이다. 남세주의 장남이다.

     

     

    남응훈
    자는 윤화(允和)이며 호는 낙삼헌(樂三軒)이다. 남세주의 차남이다.

     

     

    남유훈
    자는 극화(克和)이며 호는 낙도헌(樂道軒)이다. 남세주의 셋째아들이다.

     

    남필훈, 남시훈

    남세주의 넷째, 다섯째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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