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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절사
    문화재/내가 본 기타문화재 2013. 9. 17. 19:10

    경절사

     

     

     

     

     

     

     

     

     

     

    하공진

     

     

    ?∼1011(현종 2).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994년(성종 13)에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다. 목종 때 중랑장(中郎將)으로서, 목종이 병들어 자리에 눕자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方), 중랑장 탁사정(卓思政) 등과 함께 목종이 거처하는 궁궐 주변을 지켰으며, 얼마 뒤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郎中)이 되었다.
    1010년(현종 1)에 일찍이 동서계(東西界)에 있을 때 임의로 군대를 동원하여 동여진(東女眞)의 촌락을 치다가 패한 일이 드러나 유배당하였다. 그 해 거란의 성종이 목종을 시해한 강조의 죄를 묻는다는 핑계로 고려에 침입하자 유배에서 풀려났다.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 고영기(高英起)와 함께 군사 20여 명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피난중이던 현종을 뒤따라가 양주에서 거란군의 철수교섭을 자청, 국왕의 사절로 거란 성종을 만나 군대를 철수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고영기와 함께 거란에 볼모로 잡혀 가 거란왕에게 신임을 받았으나, 탈출을 꾀하다가 실패하여 연경(燕京)으로 옮겨져 양가(良家)의 딸을 아내로 맞아 살면서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평소 저자에서 준마(駿馬)를 많이 사 고려로 가는 길에 배치하여 두고 귀국을 꾀하다가 탄로가 나 거란왕의 국문(鞠問)을 받게 되었다.
    거란왕은 온갖 악형과 회유로 신하가 될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심한 모욕적인 말로 응대하여 거란왕을 크게 격분시킴으로써 살해된 뒤 간마저 꺼내져 씹히기까지 하였다.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郎)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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