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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여사울이존창생가터 (禮山여사울李存昌生家攄)-충청남도 기념물 제177호문화재/내가 본 시도기념물 2013. 7. 29. 23:16
예산여사울이존창생가터 (禮山여사울李存昌生家攄)-충청남도 기념물 제177호
예산여사울이존창생가터
예산여사울이존창생가터
종목
충청남도 기념물 제177호 명칭
예산여사울이존창생가터 (禮山여사울李存昌生家攄)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천주교/ 수량
1213㎡ 지정일
2008.12.22 소재지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105-3외 2필지 시대
대한제국시대 소유.관리
천주교유지재단대전교구 설명
초기 내포지역 천주교 전파의 거점이었던 여사울은 충청도 지역교회 창설의 요람으로 ‘충청도의 사도’라고 불린 이존창의 생가터가 있다.
이존창은 스스로 충청지방 천주교 신자들의 지도자임을 자인하고 내포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다
1795년 체포되어 정약종 등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아 공주 황새바위에서 참수형을 당하는 등 초기 천주교 전파의 대표적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예산여사울이존창생가터
예산여사울이존창생가터
이존창(
1752(영조 28)∼1801(순조 1). 초기 천주교 순교자.세례명 루도비코. 일명 단원(端源). 충청남도 예산의 농민 출신의 학자로, 초기 천주교회 창설자의 한 사람인 권일신(權日身)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그 뒤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하에 신부가 되어 충청도 지방을 맡아 전교에 힘쓴 결과 내포(內浦)의 사도로 불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가성직제도가 교리에 어긋남을 알고는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하여 윤유일(尹有一)에게 여비를 주어 중국 북경에 보냄으로써 마침내 주문모(周文謨)신부를 맞아들일 수 있게 하였다.1791년(정조 15) 신해박해 때 체포되어 혹심한 고문에 못 이겨 한 때 배교하여 홍산 으로 이사 갔으나, 전날의 배교를 뉘우치고는 더욱 열심히 전교함으로써, 내포와 그 인근지방은 다른 어느 고장보다도 천주교가 가장 성하였다.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金大建)의 할머니는 그의 조카딸이 되고, 최양업(崔良業)신부는 그의 생질의 손자가 되는 등, 조선 말기의 신자 중 대부분이 그가 입교시킨 신자들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으리만큼 그의 전교상의 공헌은 지대하였다.1795년 말에 그는 다시 체포되어 고향인 천안으로 옮겨져 6년 동안 연금생활을 하던 중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다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4월 8일 정약종(丁若鍾) 등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아 공주감영으로 이송되어 참수되었다.'문화재 > 내가 본 시도기념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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