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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 (昌原 鳳林寺址 眞鏡大師塔碑)Stele of Buddhist Monk Jingyeong from Bongnimsa Temple Site, Changwon-보물 제363호문화재/내가 본 보물 2024. 7. 8. 19:08
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 1기 지정일 1963.01.21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시대 통일신라시대 소유 국유 관리 국립중앙박물관 국가유산 설명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 심희(審希)의 탑비로, 원래 경남 창원의 봉림사터에 있던 것을 1919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심희(855∼923)는 9세에 출가하여 명산을 다니면서 수행을 하다가 경남 창원에서 봉림사를 창건하니, 이때부터 선문9산 중 하나인 봉림산문의 기운이 크게 일어났다. 궁으로 들어가 경명왕에게 설법을 하기도 하였고, 그 후 다시 봉림사로 돌아와 제자들을 지도하다 68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왕은 시호를 ‘진경대사’라 하고, ‘보월능공’이라는 탑이름을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유난히 크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머리 위에는 뿔이 있던 작은 구멍이 있다. 등 위로는 비를 꽂아두기 위한 네모난 홈을 마련하였는데, 주위에 구름무늬가 가득하다. 비문이 새겨져 있는 비몸은 분실된 부분이 있어 옛 탁본을 참고로 복원해 놓았다. 머릿돌에는 구름속에 둘러싸인 두 마리의 용이 모퉁이에 각 한 마리씩 표현되어 있다.
통일신라 경명왕 8년(924)에 세워진 비로, 왕이 직접 비문을 짓고 행기(幸期)가 글씨를 썼으며 성휴(性休)가 새겼다. 각 조각들이 얕아지고 형식화된 경향이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쇠퇴하던 기풍을 보여준다.'문화재 > 내가 본 보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