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리 유적은 진동 토지구획 정리사업 과정에서 발견한 청동기 시대의 대규모 유적이다. 창원에서 진동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14호선 옆에는 청동기 시대의 발이, 태봉천 옆에는 석관묘 45기와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이 유적과 관련된 마을은 지금의 진동 초등학교 근처에 형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동리 고인돌군은 발굴 조사 당시 모두 11개의 군집으로 나누어 •조사되었는데, 주인공이 묻혀 있는 매장 주체부* 주위를 원형이나 사각형 모양으로 경계석을 두른 특이한 구조임이 밝혀졌다. 묘역식, 구획식, 기단식 무덤으로도 부르는 이런 형태의 고인돌은 주로 우리 나라 남부 해안 지역에 분포한다. 유적 주위의 망곡리, 신촌리 등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마을과 무덤이 대평리에서는 삼국 시대의 무덤이 발굴 조사 되었고 마산 운전면허 시험장에서는 요령식 동검(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었다. 진동리 고인돌군 서쪽에는 조선 시대 진해현 관아와 진해현 성이 남아 있어 청동기 시대는 물론 조선 시대까지 이 일대가 마을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유적은 2006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매장주체부 시신이나 관, 부장품이 있는 자리.
문화재 설명
경상남도 창원시 진동면 진동리 130번지 일원에 위치하는 창원 진동리 유적은 토지구획정리사업 과정에서 발견되었고 발굴조사 결과 국내 최대규모의 청동기시대 집단묘역이 확인된 유적으로 대형지석묘와 석관묘가 집단으로 발굴되었다.
지석묘는 원형 또는 장방형으로 넓은 범위(길이 500m, 폭 150~200m)에 걸쳐 대형묘역이 서로 연접되어 군집을 이루고 있고 석관묘는 41기가 조사되었으며, 2~5기씩 4곳으로 나뉘어 소형 묘역으로 분포하고 있다. 출토유물로는 마제석검, 돌화살촉, 무문토기편 등이 있다.
지석묘(A군 1호)는 상석의 존재는 알 수 없으나 묘역과 매장주체부를 가지고 있다. 원형의 묘역은 직경 20m내외로 대형이며, 둘레는 주구(周溝, 물고인 도랑)를 설치하였다. 묘역의 내부는 잔자갈로 쌓아 1차 분구(墳丘)를 만들고 그 위에 흑갈색점질토를 재차 성토하면서 그 상부를 즙석(葺石)하였으며, 묘역 중앙에는 지상식 매장주체부를 설치하였다. 묘역의 규모나 형태를 볼 때 지석묘 피장자들과 석관묘 피장자는 그 생전 위상이 현저하게 차이가 났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지석묘 및 석관묘 무덤군의 규모와 형태, 구조와 특징에서 우리나라 초기국가의 발생과정과 집단의 지위 및 혈연관계를 알 수 있고 그 문화상에 있어서 중국 동북지방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사하여 향후 비교 연구를 통한 문화의 흐름·전통·원류를 찾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산진동리유적 → 창원 진동리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