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신성은 남산 북쪽의 계곡과 비교적 야트막한 산봉우리를 이어 쌓은 신라의 산성으로 월성(月城)과 경주평야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성의 둘레는 4,850m 정도로, 동쪽의 명활성(明活城), 서쪽의 서형산성(西兄山城), 북쪽의 북형산성(北兄山城)과 함께 남쪽에서 서라벌을 지키던 중요한 산성이었다. 진평왕 13년(591)에 성을 쌓았다고 하고, 문무왕 19년(679)에 크게 고쳐 쌓았다고 하는데, 성벽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부분은 문무왕 때 고쳐 쌓은 곳으로 보인다. 성안에 큰 창고 2개를 짓고 무기와 군량미를 저장하여 전쟁에 대비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전하지만, 지금은 창고 터만 3곳이 남아있다. 성 부근에서 여러 기의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가 발견되었다. 비문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와 일정한 길이의 성벽을 맡아 쌓았는데, 만일 3년 이내에 성벽이 무너지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서약의 글과 함께 성을 쌓는 데 참여한 사람들의 벼슬, 성명, 출신지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성을 쌓은 기록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신라의 지방 통치 체제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다.
문화재 설명
경주 남산의 북쪽에 있는 신라 산성으로 ‘신라 남산신성’이라고도 한다.
신라 진평왕 13년(591)에 쌓았다고 전하며, 신라 문무왕 19년(679)에 성을 크게 고쳐 쌓았는데, 지금 성벽이 잘 남아있는 부분은 이때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남산 꼭대기를 중심으로 돌로 쌓았으며, 성 안에는 3개의 커다란 창고가 있어 무기와 식량을 저장하고 전쟁에 대비하였다.
성 부근에서 발견된 남산신성비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와 일정한 길이의 성벽을 맡아 쌓았으며, 만일 3년 이내에 성벽이 무너지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서약의 글과 함께 관계한 사람들의 벼슬·성명·출신지가 새겨져 있다.
경주평야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이 산성은 서쪽의 서형산성과 동쪽의 명활성, 그리고 북쪽의 북형산성과 함께 신라의 왕도를 호위했던 성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지금도 큰 창고 자리에서 불에 탄 쌀이 나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