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64호 창녕 화왕산성은 화왕산(해발 756m)을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화왕산성은 둘레가 2.7km에 이른다. 현재 성벽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 물을 저장하는 집수지**가 남아있다. 화왕산성은 비화가야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창녕의 군사적 중심지로 활용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근거지로 삼아 큰 전공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 화왕산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창녕의 진산***으로 소개되어 있다. 아울러 집수지에서 제사와 관련된 철제 무기와 용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제 인형, 동물 뼈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창녕지역의 제의를 담당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화왕산성은 예로부터 창녕을 수호하는 곳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실체가 남아있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 테뫼식 산성 :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 ** 집수지(集水地) : 성 내 군사들의 식수와 방화수로 사용하기 위해 물을 모아두는 시설물 *** 진산(鎭山) : 한 마을이나 고을의 중심이 되는 산
문화재 설명
창녕 읍내의 동쪽 화왕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으로 보이며 가야의 산성으로 생각된다. 험준한 북쪽의 바위산을 등지고 남쪽 봉우리 사이의 넓은 부분을 둘러싼 산성으로 둘레가 2,6㎞이다. 창녕은 낙동강 중류에 넓게 펼쳐진 곡창지대의 중심지이며 서부 경남 지방에 대한 교통·군사상의 요충지로 이 산성이 당시 매우 중요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현재 동문·서문·연못이 남아있다.
조선 세종 때 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시 중요성이 인식되어 곽재우가 의병 근거지로 왜병의 진출을 막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한두 차례 수리가 되어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창녕을 보호하는 진산으로 기록된 사실과 영산·현풍을 포용하는 성이라는 점에서 군사적인 의미가 매우 큰 요충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