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사지 淸平寺址 강원도 기념물 고려 광종 24년(973)에 당나라 승려인 영현선사(永玄禪師)가 이곳에 절을 세우고 백암선원 이라고 하였다. 이곳은 얼마 뒤 문을 닫았는데 문종 22년(1068)에 이 지역에서 벼슬을 살던 이의가 절을 고치고 새로 열면서 이름을 보현원이라고 바꾸었다. 선종 6년(1089)에는 이의의 아들인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면서 많은 건물을 새로 짓고 이름을 문수원이 라고 하였다. 이후 조선 명종 때 승려 보우선사(普雨禪師)가 절을 고쳐 지으면서 이름을 청평 사로 바꾼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평사에는 국보로 지정되었던 극락전 건물과 고려 최고의 명필가인 탄연이 쓴 문수원기비 가 전해 내려왔는데 한국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이들은 1975년과 2008년에 각각 복원 되었다. 그 밖에도 회전문(보물), 청평사 삼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진락공 부도, 환숙당 부도 등 귀한 유물이 많이 남아있다. 또 절 주변의 자연 지형을 이용한 고려 시대의 정원 양식을 보여준다. 직사각형의 연못인 영지, 기암괴석, 폭포, 등이 어우러진 뛰어 난 경치에 이끌려 이제현, 김시습, 이황 등 많은 문인이 찾아 머무르거나 글을 남기기도 했다.
문화재 설명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에 지어져 ‘백암선원’이라 부르던 유서깊은 사찰이다. 그후에 보현원, 문수원으로 불려오다 조선 명종 때 보우선사가 크게 고쳐 지으면서 이름을 청평사로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랜 세월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문수원기비와 국보였던 극락전 등이 불타 없어졌으며, 현재의 극락전은 최근에 다시 지은 것이다. 남아 있는 유물로는 회전문(보물 제164호), 삼층석탑, 진락공 부도, 환숙당 부도 등이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관직에 있던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숨어 지내던 문수원과 영지가 남아 있는데, 이곳은 고려시대의 정원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