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은 금산군수로 재직하다 1910년 경술국치(國權被奪)에 항거하여 순국한 일완(一玩) 홍범식(洪範植)의 고택이다. 또한 근대 역사소설의 이정표가 된 『임꺽정(林巨正)』의 작가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 1888~1968)의 생가로도 널리 알려진 문화사적유산이다. 홍명희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이 집 사랑방에서 1919. 3. 19. 괴산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이 고택은 173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뒷산의 자연경관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내부 공간을 연출한 형태로 보인다. 건물은 좌우 대칭의 평면 구조를 갖는 중부지방 살림집의 특징적인 건축 양식을 보이고 있다. 2002년 괴산군에서 매입하여 2008년까지 안채, 사랑채, 광채 등 낡은 건물을 수리하고, 없어진 건물(4동)과 화장실 등을 다시 세웠다.
문화재 설명
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에 있는 이 고가는 역사소설 『임꺽정(林巨正)』의 작가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 1888∼1968)의 생가이다.
정남향으로 지어진 건물의 안채 구조는 전체적으로 정면 5칸·측면 6칸의 ‘ㄷ’자형으로 ‘一’자형 광채를 맞물리게 하여, 광채를 합한 안채는 ‘ㅁ’자형이다. 사랑채는 좌측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적으로 뒷산의 자연경관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조화시키며 오밀조밀한 내부공간을 연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좌우대칭의 평면구조를 갖는 중부지방의 살림집의 특징적인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이 집에서는 금산군수로 재직하다 1910년 경술국치에 항거·자결순국한 일완(一阮) 홍범식(洪範植, 1871∼1910) 선생이 성장했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 당시 지역 주민들이 모여 괴산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고 전한다.
이 가옥은 1730년(옹정 8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선후기 중부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보여주는 고가인 동시에 3·1운동과 관련된 유적이며, 문학사적 유산이자 항일지사의 고택인 귀중한 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