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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성사제 신도비 (昌寧 成思齊 神道碑)-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호문화재/내가 본 문화재자료 2013. 4. 3. 15:02
창녕 성사제 신도비 (昌寧 成思齊 神道碑)-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호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호 명칭
창녕 성사제 신도비 (昌寧 成思齊 神道碑) 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
95㎡ 지정일
1983.07.20 소재지
경남 창녕군 대지면 석리 729-5 시대
소유.관리
창녕성씨정절공파종회(성낙우) 설명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앞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고려말의 충신인 성사제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인데, 낮은 담장이 둘러진 비각 안에 자리하고 있다.
성사제는 공양왕 때 보문각 직제학의 벼슬을 지내었으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이를 한탄하며 끝까지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특히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원래 두문동은 경기도 광덕산 서쪽의 골짜기를 이르는 지역이나, 고려말 72명의 신하들이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벼슬을 거부하고 숨어지내던 곳으로 더 유명하다.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후손들이 그의 충절에 보답하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라 한다.
※ 2003년 9월 18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호 고려충신 성씨비에서 고려충신 성사제 신도비로 명칭변경됨.※ 2003년 9월 18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호 고려충신 성씨비에서 고려충신 성사제 신도비로 명칭변경됨.
고려충신성사제신도비 (高麗忠臣成思齊神道碑) 고려충신성사제신도비 (高麗忠臣成思齊神道碑) 성사제는 공양왕 때 보문각 직제학의 벼슬을 지냈으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이를 한탄하고 두문동으로 들어가 세상에 나오지 않은 두문동 칠십이현 가운데 한 사람이다. 1873년(고종 10) 정절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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