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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원 안정라씨 삼세충효문 (淸原 安定羅氏 三世忠孝門)-충청북도 기념물 제40호
    문화재/내가 본 시도기념물 2013. 3. 24. 18:31

    청원 안정라씨 삼세충효문 (淸原 安定羅氏 三世忠孝門)-충청북도 기념물 제40호

     

     

    종목

    충청북도 기념물 제40호

    명칭

    청원 안정라씨 삼세충효문 (淸原 安定羅氏 三世忠孝門)

    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수량

    1 동

    지정일

    1984.12.31

    소재지

    충북 청원군 북일면 비중리 110-1

    시대

     

    소유.관리

    사유,나웅찬

    설명

    삼세충효문은 조선 후기의 무신 경흥부사 퇴수헌 나사종(1440∼1491)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신각과 나운걸(1456∼1493)과 그의 아들 빈(1473∼1495), 린(1475∼1495) 두 형제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삼효각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나사종은 성종 22년(1491) 여진족이 군사 5천명을 거느리고 쳐들어오자 군사 50명을 이끌고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가 죽은 후 숙종 43년(1717)에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병조판서에 올랐고 충정(忠貞)이라고 시호가 내려졌다. 나운걸은 여진정벌에 나아가 부친의 원수를 갚지 못하자 3년상을 마치는 날 자결하였다. 빈과 린 형제도 효성이 깊어 수차례 여진정벌에 나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친의 3년상이 끝나는 날 역시 목숨을 끊어 충효의 모범이 되었다.

    삼세충효문은 충신각과 삼효각이 나란히 남아있고 그 둘레에 담장을 둘러 보호하고 있다.

     

     

    먼 곳에 있는 데 안내판 자체도 오래되어서 망원렌즈도 없고

     

     

     

     

    가까이 갈 수 없어 담 밖에서 

     

     

     

     

     

     

      

     

     

     

     

     

     

     

     

     

     

     

     

     

     
    삼세충효문은 조선 숙종(肅宗) 43년(1719)에 여진족과 싸우다 전사한 경흥부사(慶興府事) 충정공(忠貞公) 퇴수헌(退修軒) 나사종(羅嗣宗, 1440~1491)의 충절을 기리어 세운 충신각(忠臣閣)과 인조(仁祖) 16년(1638)에 나운걸(羅云傑, 1456~1493)과 그의 아들 빈(濱, 1473~1495) 린(潾, 1475~1495) 형제의 효성을 기리어 세운 삼효각(三孝閣)을 합하여 부르는 2개의 정려각이다.

    나사종은 성종(成宗) 22년(1491) 여진족이 기병(驥兵) 5천을 거느리고 변방에 쳐들어왔을 때 아군 50여명을 이끌고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며, 그의 아들 운걸은 여진정벌에 백의종군하였으나 부친의 원수를 갚지 못함을 비분하여 부친의 3년상을 마치는 날 자결하였고, 운걸의 아들 빈, 린 형제도 효성이 깊어 수차례 여진정벌에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친의 3년상이 끝나는 날에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 3세대가 모두 기일(忌日)을 같이하는 충효의 선례를 남겼다.

    나사종은 숙종 43년(1717)에 여진정벌의 공으로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정(忠貞)이란 시호가 내려졌으며, 빈과 린은 숙종 33년(1707)에 판서로 추증되었다. 현재 마을 입구에 동향으로 세워져 있는 이 삼세충효문은 충신각과 삼효각이 나란히 남아 있고 이들 둘레에 담장을 둘러 보호하고 있다.
     경흥부사(慶興府事) 충정공(忠貞公) 퇴수헌(退修軒) 나사종(羅嗣宗, 1440~1491)나사종은 자(字)는 광원(光遠), 호는 퇴수헌(退修軒)인데 효성이 지극하고 학행과 무술이 뛰어났으며 특히 궁마(弓馬)에 능하고 의협심이 강하여 충청도 관찰사

    성준

    (

    成俊

    )의 천거로 발탁되었다.그 후 1486(성종 17)에 경흥부사(慶興府使)가 되었고, 1491년(성종 22) 여진족 올적합(兀狄哈)이 조산보(造山堡)에 침입하자,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이에 숙종은 병조참판에 추증하고 충정(忠貞)이란 시호를 내리고 청주목사 김한(김한)에게 명하여 충신문을 건립하였다.

     나운걸(羅云傑, 1456~1493)

    나운걸은 호가 효강(孝剛)인데,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고 삼년상이 끝나기도 전에 허종(許宗)의 여진정벌에 백의종군하였다. 그러나 올적합을 죽이지 못하자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고 탈상(脫喪)하는 날 자결하였다.
    羅 빈(濱, 1473~1495)羅 린(潾, 1475~1495)나빈과 나린 형제도 효성이 깊어 여진정벌에 자원하였으나 뜻을 못이루자 역시 아버지 삼년상이 끝나는 날 피를 토하고 자진(自盡)하니, 삼 세가 기일을 같이하는 충효를 남기었다.

     

    가능한 일일까? 놀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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