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조명군총 泗川 朝明軍塚 경상남도 기념물 제80호 사천 조명군총은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선진리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을 몰아내고자 결전을 벌이다 전사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집단 무덤이다. 명나라 군의 전사자가 훨씬 많아 ‘당병무덤’, ‘뎅강무데기’라 불리기도 하였다. 무덤은 사방 36㎡의 네모반듯한 모양이다. 싸움이 한창 진행될 즈음 우리 편 군대 진영의 화약고가 폭발하면서 화재가 일어나자 왜군은 이를 틈타 역습을 하였다. 이때 수천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왜군은 그들의 승리를 본국에 알리려고 죽은 군사들의 귀와 코를 베어 일본으로 보내었다. 조선 사람들은 싸움이 끝나고 귀와 코, 목이 베어진 전사자들을 수습하여 한데 모아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을 돌보는 사람이 없어 약 40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1983년 사천문화원과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어 무덤을 정비하였다. 그 후 해마다 음력 10월 1일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문화재 설명
조명군총은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선진리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결전을 벌이다 희생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무덤이다.
정유재란을 일으켜 북진하려던 왜군은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저항을 받자 경상도 남해안지방으로 퇴각하여 남해안 곳곳에 성을 쌓고 머물고 있었다. 사천지방에는 왜장 시마즈의 군사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명나라 장군 동일원과 경상도 우 병마사 정기룡이 진주를 거쳐 이곳의 적을 몰아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군 진영에서 발생한 불의의 화재로 인해 적의 역습을 받게 되어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왜군은 그들의 승리를 본국에 알리기 위해 죽은 군사들의 귀와 코를 베어 본국으로 보내고, 목을 베어 묻어 큰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무덤의 형태는 사방 36㎡의 사각형으로 흔히 ‘당병무덤’, ‘댕강무데기’라고 부르며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