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무진정 咸安 無盡亭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무진정은 1542년 조삼(趙參)선생(1473~1544)이 후진양성을 하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선생은 17세인 성종20년(1489)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2년(1507)문과에 급제하여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에서 지방관을 지냈고, 중앙에서는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냈다. 독서를 좋아한 올곧은 성격으로 성균관의 생원일 때 연산군 폭정의 주도적 역할을 한 유자광을 처벌하자는 상소를 올려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킨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의 손자이다. 정자는 출입문인 동정문(動靜門)과 정면 3칸, 옆면 2칸으로 이루어졌다. 정자의 중앙에는 마루방을 두고, 양쪽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마루방과 툇마루에는 개방이 가능한 들문을 설치하여 공간 활용을 더하였다. 단순하고 소박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준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4월에 다시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서원인 소수서원의 창시자인 주세붕이 무진정 기문을 지었으며, 무진정 정자 앞에는 함안낙화놀이가 열리는 연못이 있다.
문화재 설명
조삼(趙參)선생이 후진양성과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금의 자리에 직접 지은 정자로서 자신의 호를 따라 무진정(無盡亭)이라 명명하였다. 무진선생은 1473년(성종 4년)에 태어나 성종 20년(1489)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였다. 함양 · 창원 · 대구 · 성주 · 상주의 부사와 목사를 역임하고, 내직으로 사헌부(司憲府)집의(執義) 겸 춘추관(春秋館)편수관(編修官)을 지냈다. 앞면 3칸 · 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