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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충효당 (奉化 忠孝堂)문화재/내가 본 시도기념물 2022. 8. 28. 11:15
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수량 2동 지정일 2021.02.22 소재지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 관리자 문화재 설명임진왜란 때 19세의 나이로 문경진중(聞慶陣中)에서 싸우다 전사한 충효당(忠孝堂) 이장발(李長發)(1574-1592)을 기리기 위해 1750년경에 건립한 건물이다.
건물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두른 뒤 전면에는 사주문을 설치하였으며, 담장 밖의 좌후측 언덕위에는 충효당화산이공유허비각(忠孝堂花山李公遺墟碑閣)을 세웠다.
충효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
내용출처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관광홈페이지(http://www.bonghwa.go.kr)경상북도 기념물 봉화 충효당 (奉化 忠孝堂) | 국가문화유산포탈 | 우리지역 문화재 (heritage.go.kr)
경북 봉화군과 베트남의 관계를 찾기 위해선 12세기 베트남 역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베트남 국명이 대월(大越)이었던 시기에 제6대 황제 영종의 7남 이용상(1174~?·李龍祥·베트남어로 리롱떵)이 태어났다. 베트남 최초의 통일왕조이자 장기집권 왕조인 리(Ly) 왕조(1009~1225)가 쇠퇴의 길을 걷던 시기였다.
1220년대 베트남 왕족 봉화에 정착
이용상 조카인 혜종이 제8대 황제에 오른 뒤인 1210년, 왕조의 외척이었던 진수도(1194~1264·陳守度)가 국정을 위임받아 운영하게 된 것이 리 왕조 몰락의 시작점이었다. 진수도는 혜종의 딸을 임금에 앉힌 뒤 자신의 조카와 결혼시키고 왕위를 남편에게 넘기도록 하는 방식으로 역성혁명을 일으켰다. 왕조가 이씨에서 진씨로 넘어가자 대규모 살육이 이뤄지고, 이씨 가문의 후손들은 대부분 멸족을 당했다.이용상은 숙청에서 가까스로 도망칠 수 있었다. 1226년 이용상은 일족과 부하들을 데리고 바다로 도망쳤다. 그는 남송과 대만·금나라·몽골 등을 거쳐 지금의 황해도 옹진군 화산포에 이르렀다. 베트남 왕자가 표류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고려 조정에선 크게 환영하며 이용상이 고려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화산 이씨(花山 李氏) 성씨도 조정이 하사했다.
화산 이씨 시조가 된 이용상의 둘째 아들인 이일청이 안동부사로 부임하면서 후손들이 안동과 봉화 일원에서 세거지를 이루고 살았다.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도 화산 이씨의 세거지 중 하나다. 이곳에는 이용상의 13세손인 이장발(1574~92)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충효당이 있다. 이장발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9세 어린 나이로 전장에 달려가 문경새재에서 혈전 끝에 생을 달리한 인물이다.봉화에 베트남 왕조 후손 집성촌...봉화군수 "베트남 마을 만들자" | 중앙일보 (joongang.co.kr)
봉화에 베트남 왕조 후손 집성촌...봉화군수 "베트남 마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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