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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적 제1호 경주 포석정지 (慶州 鮑石亭址)-Poseokjeong Pavilion Site, Gyeongju-사적 제1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3. 11. 10:53
경주 포석정지 (慶州 鮑石亭址)-사적 제1호
종목 사적 제1호 명칭 경주 포석정지 (慶州 鮑石亭址) 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역사사건/ 역사사건 수량 7,445㎡ 지정일 1963.01.21 소재지 경북 경주시 배동 454-3 시대 통일신라 소유 국유및 공유 관리 경주시 설명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조성연대는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5)때로 본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는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본다.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물길은 22m이며 높낮이의 차가 5.9㎝이다.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 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으나 오늘날 그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경주 포석정 뿐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
건물/부지 명칭 : 포석정지
유형 : 사찰
장소 : 경북 경주시 배동 454-3
준공/복원 시기 : 0 - 10
건축 목적 :
배경설명 : 포석정지는 경주 남산 서쪽 계곡의 포석계의 계곡가에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처용랑 망해사조에 보면 「헌강왕(875-886)이 포석정(鮑石亭)에 놀러나와 남산신(南山神)의 춤을 보고 왕이 따라 추었는데 이 춤을 어무상심(御舞祥審) 또는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 했다」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경애왕 4년(927) 11월에 왕이 포석정에 나가서 잔치를 하고 놀다가 후백제 견훤(甄萱)의 기습을 받아 왕은 죽고 왕비와 신하들이 모두 함몰되는 비극의 기사가 실려 있다.
포석정지는 신라의 이궁(離宮)에 있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던 유배거(流盃渠)의 유적이다. 유상곡수연의 시초는 중국 동진시대(東晉時代)까지 올라간다. 영화(永和) 9년(353) 3월 3일에 중국 절강성(浙江省) 남서에 있는 회계산(會稽山) 북쪽 난정(蘭亭)에 왕희지(王羲之)등 41인의 명사들이 모여 흐르는 개울에 몸을 깨끗이 씻고 결제사를 올리고 개울 위에 술잔을 띄우고 술잔이 자기 앞에 올때까지 시 한수를 지어 읊는 놀이를 하였다. 이때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 3잔을 마시었다. 이 시회의 서문이 유명한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이다. 이런 고사를 본따서 동양의 왕궁에는 유상곡수연의 유배거(流盃渠)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유배거(流盃渠)는 북경(北京)의 고궁에도 있고 일본 나라시 평성궁(平城宮) 유적에도 있다.
경주 포석정지의 유배거(流盃渠)는 굴곡진 타원형인데 긴 지름이 6.53m, 짧은 지름이 4.76m이며 타원형 수로의 구배차는 5.9cm이다. 수로의 너비는 약 30cm, 깊이는 20cm이며 타원형의 수로의 길이는 약 22m에 이른다. 이 유배거에 물을 담아 술잔을 띄워 본 결과 술잔의 크기에 따라 흐르는 속도가 다르고, 술잔 속에 술을 담은 양에 따라 다르며, 절묘한 수로의 굴곡진 곳에서 물이 돌면서 흐르기 때문에 타원형의 수로를 술잔이 흐르는 시간은 약 10여 분이 걸리었다. 이 시간이면 오언시(五言詩)나 칠언시(七言詩) 한 수는 쓸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유배거의 머리쪽에 있는 큰 느티나무 뿌리가 물이 들어오는 입구(水入口)쪽을 밀어 올려서 높아진 상태이며 흘러나가는 배수구 쪽은 포석계의 개울에 유실되면서 급속히 낮아져 있다. 포석정지의 전복같이 된 유배거는 그간에 보수하여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유배거에 인수한 물은 남산 포석계의 개울물을 나무 홈대로 연결하여 대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는 장소의 풍치는 험한 산과 무성한 대숲과 맑은 개울이 여울을 이루는 그런 경승지이다. 기록에 보이는 포석정지는 「어무상심무(御舞祥審舞)」라는 신라 춤이 생겨난 현장이며 시회를 하는 청유(淸遊)의 장소인 것이다.
1999년 5월 포석정지에서 발견된 「포석(砲石)」명문와(銘文瓦)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동경통지(東京通志) 등 기록에서 ‘물고기를 말린 형상의 석물(石物)이란 뜻’에서 「포석정(鮑石亭)」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기와에 새겨진 포(砲)자는 당시 기와 제작자들이 ‘포(鮑)’자를 약자화해 쓴 것으로 보인다. 이 기와는 당시 포석정이 운영되던 시기의 건물에 쓰였던 것으로 판단된다.출처
三國史記 , 金富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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