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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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문왕릉 (慶州 神文王陵)-사적 제181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3. 19. 11:36
경주 신문왕릉 (慶州 神文王陵)-사적 제181호 종목 사적 제181호 명칭 경주 신문왕릉 (慶州 神文王陵)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대 수량 35,283㎡ 지정일 1969.08.27 소재지 경북 경주시 배반동 453-1 시대 통일신라 소유 국유 관리 경주시 설명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신라 중대 전제왕권을 확고히 하였다.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지방통치를 위해 9주5소경제도를 설치하였고, 고구려·백제·말갈인을 포함시킨 중앙 군사조직인 9서당을 완성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를 정비하여 전제왕권을 다졌다. 높이 7.6m, 지름 29.3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둘레돌은 벽돌모양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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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감은사지 (慶州 感恩寺址)-사적 제31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3. 12. 14:10
경주 감은사지 (慶州 感恩寺址) -사적 제31호 종목 사적 제31호 명칭 경주 감은사지 (慶州 感恩寺址)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수량 26,807㎡ 지정일 1963.01.21 소재지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1 시대 통일신라 소유 국유 관리 경주시 설명 감은사는 동해안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지금은 3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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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석탑을 대표할만 할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慶州 感恩寺址 東ㆍ西 三層石塔)-국보 제112호문화재/내가 본 국보 2013. 3. 12. 13:01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慶州 感恩寺址 東ㆍ西 三層石塔)-국보 제112호 종목 국보 제112호 명칭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慶州 感恩寺址 東ㆍ西 三層石塔)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 2기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3, 55-9 시대 통일신라 소유.관리 국유,경주시 설명 감은사터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