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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이씨 옥산문중 유묵 - 원조오잠, 사산오대 (驪州李氏 玉山門中 遺墨 - 元朝五箴, 四山五臺)-보물 제526-2호문화재/내가 본 보물 2021. 1. 2. 12:00
분류 기록유산 / 서간류 / 서예 수량 17점 지정(등록)일 2006.09.01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소유자 이*** 관리자 이*** 「원조오잠(元朝五箴)」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27세 때 지은 「외천잠(畏天箴)」, 「양심잠(養心箴)」, 「경신잠(敬身箴)」, 「개과잠(改過箴)」, 「독지잠(篤志箴)」을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평소 잊지 못하여 오던 중 이언적의 아들 이전인(李全仁, 호(號)는 잠계(潛溪), 1516~1568)의 요청에 의하여 쓴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10폭에 적혀 있는 이황의 발문에 보이는데 여기에는 잠계 이전인의 요청에 의해서 썼다는 기록은 없고 끝에 ‘후학 이황 근서(後學 李滉 謹書)’라고 쓴 묵적이 선명히 남아 있다. ‘원조오잠’은 퇴계가 회재의 학문과 사상을 어떻게 보고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점을 친필로 남겼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원조오잠」은 광폭의 닥종이에 매폭 6행(行), 1행 16자(字), 자경(字徑) 약 8㎝ 해서(楷書)로 쓴 것이다. 발문은 4행(行), 자경 약 4㎝ 미만의 해행서체로서 글씨는 분방하거나 과장된 또는 거칠거나 연미한 필서가 전혀 없고, 단중전아(端重典雅)하여 순정한 원칙을 지키는 도학자의 풍모가 그대로 투영된 대표적 유묵(遺墨)이라고 할 수 있겠다. 퇴필(退筆)의 특징은 송설체(松雪體)의 유려한 필법 위에 왕희지 부자의 굳세고 단정한 필법을 보탠 것이라고 김인후는 전별시에서 언급하였는데, ‘원조오잠’은 이러한 퇴묵(退墨)의 전형적인 예에 속한 것이다.
○ 사산오대(四山五臺)
이언적은 1530년 이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좌천되자 관직을 그만 두고 귀향한 뒤, 이듬해 자옥산 기슭에 독락당(獨樂堂) 등의 옥산정사를 짓고 주위의 승경(勝景)을 명명하였다(소위 ‘사산오대’). 이들 글씨는 그중 자옥산(紫玉山)ㆍ용추(龍湫)ㆍ귀영대(歸詠臺)ㆍ징심대(澄心臺)ㆍ세심대(洗心臺)ㆍ탁영대(濯纓臺)ㆍ관어대(觀魚臺) 7곳의 명칭을 대자(大字)로 써서 축장(軸粧)한 것들로, 회재의 아들 이전인(李全仁)이 ‘원조오잠’의 글씨를 받을 때 이 대자 편액서도 함께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퇴계의 대자서(大字書) 편액(扁額)은 도산서원의 「역락서재(亦樂書齋)」, 안동(安東) 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공(禮安公) 종택(宗宅)의 「후조당(後彫堂)」, 「읍청정(挹淸亭)」, 도산의 「월천서당(月川書堂)」, 예천의 「선몽대(仙夢臺)」 등 대표적인 것이 많다. 그러나 서각(書刻)을 한 편액은 존재해도 그 원본의 필적이 다 전하는 것은 아닌데, 독락당의 ‘사산오대’는 대자 편액서가 고스란히 전한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문화재 > 내가 본 보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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