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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道山書院)-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문화재/내가 본 문화재자료 2013. 2. 19. 10:42
도산서원 (道山書院)-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
종목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 명칭
도산서원 (道山書院) 분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수량
1동/109.7㎡ 지정일
1989.03.18 소재지
대전 서구 남선로 8
대전서구 탄방동233-3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안동권씨 탄옹공파종중 설명
만회 권득기와 그의 아들 탄옹 권시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득기는 41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을 지냈으며,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도학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권시도 학문이 뛰어나 대군사부·한성부좌윤 등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에 힘썼다.
이 서원은 조선 숙종 19년(1693)에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숙종 37년(1711)에 나라에서 내린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당 3칸·묘문 3칸·강당 4칸·서재 3칸·남재 4칸·전사청 3칸 등 모두 23칸 규모를 가진 서원이었다고 하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그 뒤 1921년 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으며, 1968년·1973년 두 차례에 걸쳐 안동 권씨 문중에서 복원하였다.
‘도산’이라는 이름도 이곳에 머무르면서 도학을 연마하였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권득기 그는 조선 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지(重之), 호는 만회(晩晦)이다. 권득기가 궁내동에 살고 있던 전주이씨 집안의 귀성군 이첨의 사위가 되어 분당구 금곡동 쇳골에 처음 정착하게 된 이후 안동권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 [가계]
친아버지는 예조판서 권극례(權克禮)이며 어머니는 윤천석의 딸인데, 큰아버지인 선공감역 권극관(權克寬)에게 입양되었다.
- [활동사항]
1589년(선조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0년(광해군 5)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조좌랑에 제수되었다. 그 뒤 광해군이 인목 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지금의 덕수궁]에 유폐시키고 영창 대군을 살해하는 등 폭정을 휘두르자 고산도찰방(高山道察訪)을 사임하고 충청남도 태안에 은거하였다.
- [저술 및 작품]
저서로 『만회집(晩晦集)』, 『연송잡기(然松雜記)』 등이 있다.
- [묘소]
권득기 묘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산8-21에 있다.
- [상훈과 추모]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충청도 공주의 도산서원(陶山書院)에 제향되었다.
http://seongnam.grandculture.net/Contents/Index?contents_id=GC0010045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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