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서울 楊花나루와 蠶頭峰 遺蹟)-사적 제399호
    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3. 2. 8. 20:44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서울 楊花나루와 蠶頭峰 遺蹟)-사적 제399호

     

    종목 사적 제399호
    명칭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서울 楊花나루와 蠶頭峰 遺蹟)
    분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교통/ 수상교통
    수량 36,245㎡

    지정일

    1997.11.11

    소재지

    서울 마포구 토정로 6 (합정동)

    시대

    조선시대

    소유

    천주교서울대교구재단

    관리

    천주교서울대교구절두산기념관

    설명

    한국 천주교의 성지인 잠두봉과 주변에 있었던 양화나루터를 가리킨다. 잠두봉은 봉우리가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66년 천주교에서 잠두봉을 중심으로 성당과 기념관을 세웠고 주변 지역을 공원으로 꾸몄다. 성당과 기념관 안에는 이벽, 이가환, 정약용 등 천주교와 관련된 조선시대 후기 학자들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광장 안에는 김대건, 남종삼의 동상과 사적비가 있다.

    잠두봉 주변에 있었던 양화나루터는 잠두봉이 사적으로 지정된 뒤 추가로 지정된 유적이다.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조선시대 교통의 요지였으며 곡식을 분배하고 군사상 중요 기능을 맡았던 곳이다.

    조선시대 후기 역사의 흐름과 함께 시대의 많은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가치있는 유적이다.

    ※(양화나루·잠두봉유적 →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양화진의 잠두봉이 절두산으로 바뀐 경위는 다음과 같다. 고종 3년(1866년), 천주교에 대하여 모진 박해가 가해져 서소문과 새남터에서 9명의 신부가 순교하고,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참하게 순교하였다. 이때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중국으로 탈출한 리델(F. C. Redel) 신부의 고발로 텐진(天津)에 주둔한 극동함대사령관 로즈(P. G. Rose) 제독의 프랑스 함대가 한강으로 올라왔다. 이때 리델 신부와 3명의 천주교 신자도 이 배에 동승하여 통역과 안내를 담당하였다. 3척의 함대 중 2척의 배가 한강으로 거슬러 9월 26일 양화진에 이르렀으며, 군함 한 척은 서강까지 올라왔다. 프랑스 함대는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수많은 쪽배와 뗏목의 저지를 받았으나 그들은 대포 한방으로 간단히 물리치고 수심(水深)과 조수(潮水)를 세밀히 조사하면서 유유히 올라왔다. 프랑스 함대는 24시간 양화진에 정박하여 측량(測量)도 하고 주위의 반응을 살피는 행동을 하였으나 조선 군대는 아무런 반격도 할 수 없었고 프랑스 함대가 스스로 물러갔다.  이때 대원군은 프랑스 군함이 양화진까지 온 것을 물리치지 못한 치욕과 한을 풀기 위하여 이를 갈았다. 그는 "오랑캐가 머물러 있던 자리를 깨끗이 씻어야 할텐데 그것을 한강 물로 씻기는 물이 너무 아깝다. 차라리 그 자리는 오랑캐를 끌어드린 천주교도의 피로 씻으리라"하면서 가톨릭교도들의 처형장을 서소문 밖 네거리와 새남터 등에서 이곳으로 옮긴 후 수 많은 가톨릭교도들을 끌어다 참수함으로써 이후부터 잠두봉은 절두산(切頭山)으로 부르게 되고 가톨릭의 성지가 되었다.
    가톨릭에서는 병인박해 100주년을 기념하여 1966년에 순교자를 기리는 박물관을 잠두봉에 세웠다. 현재 절두산 박물관의 시설을 살펴보면 절두산 암벽 바로 위에 순교성인 28위의 유해를 모신 지하묘소 성해실이 있다. 성당 우측에 있는 박물관에는 복자(福者), 시위(諡位)를 받은 순교자들의 조각과 국내외의 신자들의 글씨, 조선시대의 고문하던 각종 형구,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측정한 한강 수심도, 대원군의 난초 그림 등 한국교회의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여러 자료와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한국 103위 성인 중 27위의 성인, 성녀와 1위의 무명순교자 유해가 지하 성해실에 안치되어 있다. 성 김대건안드레아와 외국인 사제10위 (주교 3: 범엥베르, 베르뇌, 다블뤼; 신부7: 나모방, 정샤스탕, 도리, 오메트르, 위앵, 볼리외, 브르트니에르)의 유해, 이호영, 이영희, 이정희, 최경환, 허계임, 김성우, 남종삼, 최형, 우세영, 장주기, 황석두, 손선지, 이명서, 한재권, 정문호, 이윤일성인의 유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