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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몽한각 (潭陽夢漢閣)-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문화재/내가 본 시도유형문화재 2016. 11. 10. 14:42
담양몽한각 (潭陽夢漢閣)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
종목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
명칭
담양몽한각 (潭陽夢漢閣)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
1 동
지정일
1974.12.26
소재지
전남 담양군 대덕면 매산리 17번지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전주이씨문중
설명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의 5대 후손인 이서(李緖)(1482∼?)를 추모하기 위하여 순조 3년(1803) 담양부사 이동야와 창평현령 이훈휘가 지은 것이다.
이서는 모반을 꾀한다는 이유로 중종 2년(1507)에 창평으로 유배되었다가 15년 만에 풀려난 뒤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담양 골짜기에서 서적을 편찬하며 자손과 제자를 가르치는데 전념하였다.
몽한각은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로,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이서(李緖)
이서는 태종의 고손이며 양녕대군의 증손으로 중종 2년(150년) 이과(李顆)의 옥사로 인하여 전라도 창평으로 유배되었다가 그후 14년동안의 귀향살이 끝에 풀려 났으나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 담양군 대덕면에서 일생을 마쳤다.
유배지시절 그의 시에 나온 말 술회시(述懷詩) 가운데, 금야몽(今夜夢)에서 몽자(夢字)와 한강파(漢江波)에서 한자(漢字)를 따다가 붙여 만들어 진 것으로, 궁궐을 연모(戀慕)하는 연궐시(戀闕詩)가 있어서 여기서 유래(由來)해서 그의 재실을 [몽한각(夢漢閣)]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몽한각은 양녕대군들의 후손들인 당시 담양부사 이동야(李東野)와 창평현령 이훈휘(李薰徽) 등이 이 지방에서 관직을 보내면서 오랫동안 이서 공의 재실이 없음을 알고 순조 3년 (1803년) 에 현재의 몽한각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낙지가(樂志歌)
'뜻을 즐기는 노래'란 제목에서 볼 수 있듯 귀양살이를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거기에서 기쁨을 찾으려 했다. 유배가사이면서도 은일가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양녕대군의 증손인 이서는 누명을 쓰고 14년 동안이나 전라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그는 귀양이 풀린 뒤에도 서울에 올라가지 않고 담양에서 은거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낙지가〉는 이때 만들어진 노래이다. 전체 152구이며 4·4조로 되어 있다. 줄글체 기사 형식이며, 전례나 고사를 많이 사용해서 한문에 토를 단 것처럼 보일 정도로 한자투성이다. 곤륜산 일지맥에서 시작하여 팔도를 돌아 자신이 살고 있는 담양의 초가삼간까지 그렸다. 버림받은 처지이면서도 자신의 위치가 천하의 중심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옛날과 지금 은사들의 행적을 들면서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며, 중국 후한 때 사람 중장통의 〈낙지론〉을 본받아 안빈낙도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지은이의 문집 〈몽한영고 夢漢零稿〉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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