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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 선생 동상-국가지정현충시설문화재/내가 본 기타문화재 2013. 2. 6. 21:54
인촌 김성수 선생 동상-국가지정현충시설
김성수(金性洙, 1891년 10월 11일 ~ 1955년 2월 18일) 김성수(金性洙, 1891년 10월 11일 ~ 1955년 2월 18일)는 일제 강점기의 교육인 겸 언론인·기업인·민족운동가 대한민국의 정치인, 언론인, 교육인, 서예가이다. 일본에 유학, 와세다 대학에서 수학한 후 귀국해 교육 운동에 투신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실력양성론을 주장하며 민족 자본을 육성하는 활동을 했으며, 재정난을 겪은 중앙고등보통학교와 보성전문학교 등을 인수해 운영하는 등 교육 활동도 했다.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동아일보를 경영하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그는 실력양성론에 감화받아 민족 자본의 육성, 교육 활동 등을 통해 실력 양성을 추진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의 감시와 동아일보의 폐간 문제로 수시로 조선총독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가 운영하던 중앙고등보통학교와 보성전문학교의 학생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면서 그는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감시를 당했다. 1935년부터는 공직에서 은퇴한 후, 국내 고미술품의 밀반출을 막기 위해 고미술품 수집에 힘을 기울였고, 태평양 전쟁기간 중 창씨개명과 협력 강요를 받았으나 거절하였다.
8·15 광복 이후에는 한국민주당 조직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봉대운동 등에 참여한 뒤 김구, 조소앙 등과 함께 신탁통치반대운동를 주관하였다. 1947년부터 한국민주당의 당수를 지내기도 했고 1947년 3월부터 정부 수립 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냈다. 그 뒤 5.10 단독 총선거에 찬성하였다.
1951년 5월부터 1952년 8월까지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역임하였으며, 민주국민당 창당과 이승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호헌동지회를 추진, 주관하였다. 경성방직·보성전문학교(뒷날의 고려대학교)의 인수자(설립자 석현 이용익)이며 동아일보 창설자의 한 사람이다. 조선시대의 유학자 김인후(金麟厚)의 13대손이다. 전라북도 고창 출생으로, 부안 줄포에서 자랐으므로 부안을 고향으로 보기도 한다. 선대의 고향은 전라남도 장성이므로 장성 출신으로도 본다. 자는 판석(判錫), 아호는 인촌(仁村), 본관은 울산이다. 임종 직전 장면(張勉)의 권고로 종부성사를 받고 가톨릭 세례명은 바오로라 하였다.
1947년 범우파정당 통합에 지지하였으나 장덕수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1954년의 호헌동지회에서 신당을 조직할 때에는 조봉암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사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으며, 2002년 2월 28일 대한민국 국회의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과 광복회가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수록되었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언론계 친일파로 수록되었으나, 유족 등 관련단체에서는 반발하고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84%B1%EC%88%98_(1891%EB%85%84) '문화재 > 내가 본 기타문화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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