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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곤산서원
    문화재/내가 본 기타문화재 2015. 11. 2. 12:47

     

     

     

     

     

     

     

     

     

     

     

     

     

     

     

     

     

     

     

     

     

     

     

     

    신우덕(申祐德)

     

    신익황(申益)

     
    [간략정보]
    • 한자
    • 분야
    • 유형
    • 시대
    • 성격
    • 출신지
    • 성별
    • 생년
    • 몰년
    • 본관
    • 집필자
     
     
    [정의]
    1672(현종 13)∼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학자.
    [개설]
    경상북도 인동 출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명중(明仲), 호는 극재(克齋). 아버지는 수사 신명전(申命全)이다.
    [생애와 활동사항]
    1692년(숙종 18)향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그의 재주를 아껴 병조에서 과거에 응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사양하였다. 그 학덕으로 인해 1708년 천거되어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제수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사퇴하였다. 1717년 천거에 의해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가 되었으나 왕에게 나아가 사은(謝恩)하고 바로 돌아왔다.
    [학문세계와 저서]
    그의 학문은 이현일(李玄逸)에게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1698년 5월 이현일을 광양의 배소로 찾아본 것을 시초로 여러 차례 면대하여 가르침을 받았으며, 전후 열 차례의 서면 질의를 통한 학문적인 논의가 있었다. 이들의 논의 내용은 유학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행해졌으며, 특히 당시 학계의 주요 관심사였던 이(理)와 기(氣), 사단(四端)과 칠정(七情),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주된 문제였다.
    그는 이현일을 만나기 이전에는 이황(李滉)의 설보다는 이이(李珥)의 설에 기울어져 있었다. 즉, 이와 기를 분개(分開)하기보다는 혼륜(渾淪)한 입장에서 보았으며, 사단과 칠정은 근원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사단은 칠정의 선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기의 발동(發動)에 있어서도 이황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이 아니라, 이이의 기발일도설(氣發一途說)에 찬성했다.
    그러나 이현일과의 학문적 교섭을 통해 점차 이황·이이의 사상을 동등한 차원에서 인정하려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거기에서 더욱 철저한 논의를 거쳐 마침내 확연히 이이를 버리고 이황의 견지를 찬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를 한갓 무정의(無情意)·무조작(無造作)의 추상적인 사물(死物)이 아니라, 은연중에 능동(能動)·능발(能發)을 간직한 것이라 하고, 이와 기를 확연히 둘로 갈라서 보았다.
    이에 따라 이와 기가 한 물건이라고 보는 이이의 주장에 반대하여 “이와 기를 구별하지 않고 한 물건이라고 하면, 마침내 욕(欲)을 이라 하고 기를 성(性)이라고 인정하게 된다.”라고 하고, “이와 기를 확연히 나누고 이가 선한 것임을 알 때 비로소 윤리가 성립된다.”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사단칠정설에 있어서도 사단이 칠정의 일부분, 즉 칠정이 발하여 절도에 맞게[中節] 된 것이라는 주기설(主氣說)을 반대하고, 사단과 칠정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서 사단은 도심이며, 칠정은 인심이라고 하였다.
    당시 영남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권두인(權斗寅)·권두경(權斗經)·이재(李栽)·정사신(丁思愼)·권중도(權重道) 등과 학문적으로 교류하였다. 저서로는 『극재집(克齋集)』·『운곡도산휘음(雲谷陶山徽音)』·『경재집해(敬齋集解)』·『이기성정통간도(理氣性情通看圖)』·『동국승경와유록(東國勝景臥遊錄)』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765년(영조 41) 아들 신염(申琰)의 공로로 사헌부대사헌에 추증되었고, 1784년(정조 8) 사림들이 모여 그의 위패를 곤산서원(崑山書院)에 봉안하였다.
     
    [참고문헌]
    • 『극재집(克齋集)』
    • 『갈암집(葛庵集)』
    • 『밀암집(密庵集)』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3293에서

     

    극재문집(克齋文集) : 조선 후기의 학자 신익황(申益愰)의 시문집.

    시대 조선
    성격 시문집
    유형 문헌
    수량 13권 7책
    소장/전승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창작/발표시기 1862년(철종 13)
    간행/발행처 신택경, 신정응
    분야 종교·철학/유학

    [내용]

    13권 7책. 목판본. 1862년(철종 13) 증손 택경(宅京)과 현손 정응(楨應)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유치명(柳致明)의 서문과 권말에 정응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사(辭) 1편, 시 167수, 권2∼5에 서(書) 59편, 권6∼9에 잡저 18편, 권10에 서(序) 3편, 기(記) 3편, 발 9편, 잠(箴) 2편, 제문 2편, 애사 1편, 권11에 행장 4편, 권12·13은 부록으로 연보·가장·신도비명·만사·제문·봉안문·상향축문·상량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 중에서 「촉석루(矗石樓)」·「창렬사(彰烈祠)」·「용벽루(涌碧樓)」·「망교대육영(望郊臺六詠)」 등은 명승고적을 찾아 경치와 감회를 읊은 것으로 읽을 만하다. 「직부탄(織婦歎)」은 여심을 나타낸 서정시(抒情詩)로 또한 일품이라 할 수 있다.

    서(書)에는 특히 이현일(李玄逸)에게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등 성리학의 쟁점이 되는 문제에 관해 질의, 토론한 내용이 많다.

    잡저에는 그의 학문적 심도를 알 수 있는 논설이 많다. 성리학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들로 「귀신설(鬼神說)」·「선유인심도심설동이총변(先儒人心道心說同異總辨)」·「선유사단칠정설동이총변(先儒四端七情說同異總辨)」·「답혹인심정분이기제일변(答或人心情分理氣第一辨)」·「제이변(第二辨)」·「이불잡기도(理不雜氣圖)」·「심통성정(心統性情)」·「성리휘언(性理彙言)」 등이 있는데, 모두 깊은 학문적 연찬을 거친 논설이다. 그의 성리학설은 대체로 주리론(主理論)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밖에 잡저에는 「관선재학규(觀先齋學規)」를 비롯해 「강법(講法)」·「가숙잡훈(家塾雜訓)」 등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각종 규범이나 교훈을 기술한 글이 있다.

    http://encykorea.aks.ac.k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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