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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장군묘 (柳珩將軍墓)-경기도 기념물 제50호
    문화재/내가 본 시도기념물 2013. 4. 24. 15:53

    유형장군 (柳珩將軍)

    -경기도 기념물 제50호

     

     

    경기도 기념물 제50호 경기도 기념물 제50호

    경기도 기념물 제50호

     

    종목

    경기도 기념물 제50호

    명칭

    유형장군묘 (柳珩將軍墓)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수량

    1 기

    지정일

    1978.10.10

    소재지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산698

    시대

    조선시대

    소유.관리

    사유,김영련

    설명

    조선 중기의 무신인 석담(石潭) 유형(1566∼1615) 장군의 묘이다.

    장군은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천일과 함께 크게 활약하여 관직에 오르게 되었고, 선조 27년(1594)에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충성을 다해 나라에 은혜를 갚겠다는 ‘진충보국(盡忠報國)’4글자를 등에 새겼다고 한다.

    선조 30년(1597)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총애를 받으며 왜적을 물리치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선조 35년(1602)에 충청·전라·경상 3도의 수군을 통제하는 관직에 올랐다.

    유형 장군은 군사를 부리는 기술이 능하였으며 적들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시설 확립에 주력하다가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지내다 죽었다.

    현재 묘역 안에는 묘비와 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묘역 근처에는 이정구가 짓고 정학교가 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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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기념물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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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柳珩)
    1566(명종 21)∼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온(士溫), 호는 석담(石潭).
    진동(辰同)의 손자이며, 경원부사 용(溶)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을 따라 강화에서 활동하다가,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가서 선전관에 임명되었다.
    1594년 무과에 급제, 선조의 친유(親諭)를 받고 감격하여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은혜를 갚겠다는 ‘진충보국(盡忠報國)’ 네 자를 등에 새겨 스스로 맹세하였다.
    신설된 훈련도감에서 군사조련에 힘쓰다가 해남현감으로 나갔는데, 1597년 정유재란 때 원균(元均)이 패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막료가 되어 수군재건에 노력하였다. 남해 앞바다에서의 전투에서는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과 이순신의 곤경을 구하기도 하였다.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부상을 입고도 전사한 이순신을 대신하여 전투를 지휘한 사실이 왕에게 알려져 부산진첨절제사(釜山鎭僉節制使)에 발탁되었다.
    그는 이순신의 신망이 두터운 인물로 1600년에 경상우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으며, 1602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다시 충청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함경도병마절도사로 회령부사를 겸하였다. 이어서 경상도병마절도사·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황해도병마절도사로 재임중에 죽었다.
    그는 용병(用兵)에 능하고, 특히 통제영(統制營)의 기계설비와 회령·경성의 축성 등 적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시설의 확립에 주력하였다.
    해남의 민충사(愍忠祠)에 제향되고,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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