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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산어산불영 (萬魚山魚山佛影)-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152호문화재/내가 본 시도기념물 2024. 12. 2. 18:01
분류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 문화역사기념물 / 민속 면적 8,900㎡ 지정일 1996.03.21 소재지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구리 4번지-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로 776 소유 대한불교조계종 만어사 관리 대한불교조계종 만어사 국가유산 설명
만어사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관련있는 유물이다.
수로왕 때 가락국의 옥지(玉池)라는 연못에 살고 있던 독룡(毒龍)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羅刹女:불교에서 말하는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가 서로 사귀면서 번개와 우박을 내려 4년 동안 농사를 망쳐 놓았다. 수로왕이 주술로써 악행을 막으려 했으나 불가능하여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여 이들에게 불법의 오계(五戒)를 받게 하였다. 이 때 동해의 수많은 고기와 용들이 불법에 감동을 받아 만어산으로 모여들어 돌이 되었는데, 그 돌들을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를 내었다. 특히 서북쪽의 큰 바위는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것이라고 전하는데, 멀리서 보면 부처의 모습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그 모습이 사라진다고 한다.「어산불영 설화」는 1180년(명종 10)에 창건된 만어사(萬魚寺)에 관한 문헌 설화이다. 『삼국유사』 권 3 「탑상편(塔像篇)」 제4 「어산불영」조에 수록되어 있다. 이 설화는 일연(一然)이 불경에 나오는 북천축가라국불영(北天竺訶羅國佛影)의 이야기에서 옮겨 온 것이다. 「어산불영 설화」는 불교와 토속 신앙과의 갈등에서 부처를 통해 갈등을 극복하고 불교 신앙이 신라에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설화의 형성에 대한 관점에는 여러 견해가 있다. 하나는 가야와 불교의 관계를 선양하거나 부처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보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수로왕의 권위를 제사장으로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설화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때보다 3세기 앞선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금관성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 이야기에서 허황후(許皇后)가 서역의 아유타국(阿踰陁國)에서 금관국(金官國)으로 올 때 탑을 배에 싣고 왔으나 금관국에 아직 불법(佛法)이 없어서 받들여지지 않았다는 내용을 통해서, 이 설화는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으며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 평가한다.
한편, 일연(一然)은 아래의 사실을 근거로, 이 설화의 근원을 불경에 나오는 북천축가라국불영(北天竺訶羅國佛影)의 이야기에서 옮겨 온 것으로 보았다. “고려의 승려 보림(寶林)이 북천축가라국 이야기와 부합하는 만어사의 몇 가지 사실을 세 가지로 요약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그 내용으로는 ① 여기에 옥지와 독룡의 이야기가 있고, ② 강변에서 구름이 나와 산 꼭대기에 이르면 음악 소리가 들리고, ③ 반석이 있고 물이 항상 괴어 있으며, 이곳이 부처의 가사를 세탁하던 곳이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 두 가지 부합점을 일연이 직접 확인하였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북천축의 가라국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설화는 불교가 전래되어 불경을 깊이 이해하고, 이 지방과 부합하는 점을 발견한 이후에 형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수로왕을 부처와 연관시키고 부처의 도움을 청하였다는 점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불교의 도움으로 나라가 다스려진다는 불국일체사상(佛國一切思想)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불경과 부합되는 지역을 발견하고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구성하여 불심을 고취해 보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둘째, 부처를 통해 토속 세력과의 갈등을 극복하고 불교 신앙이 신라에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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