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진구사지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는 5.18m이다.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진구사’ 명문(銘文, 쇠붙이나 돌 또는 그릇 따위에 새겨 넣은 글)기와가 출토되자 이전 명칭인 용암리사지 석등을 진구사지 석등으로 바꾸었다. 진구사는 7세기경 고구려계 적멸(寂滅)과 의융(義融)이 창건한 이래 통일신라시대에는 열반종 사찰이었다가 고려시대에는 조계종 사찰에서 천태종 사찰로 바뀌었고, 조선 전기인 태종 7년(1407년)에는 88개의 자복사(資福寺, 국가의 복을 기원하는 절)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석등의 팔각 받침대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 안상(眼象, 눈의 모양, 또는 눈처럼 생긴 모양)을 새기고, 그 위에 올린 연화대석(蓮花臺石, 돌로 만든 연꽃 문양의 조명시설)에는 팔각으로 연화문을 새겼다. 석등의 끝에는 큼직한 귀꽃(석등이나 돌탑 따위의 귀마루 끝에 새긴 꽃 모양의 장식)을 달아 장식하였다. 석등은 북 모양의 간주석(竿柱石, 석등의 기둥)을 사이에 두고 상대석의 앙련(仰蓮, 연꽃이 위로 향한 것처럼 그린 모양, 또는 그런 무늬)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또한 화사석(火舍石, 등불을 밝히도록 된 석등의 중간 부분)위로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을 두었으며, 옥개석 추녁긑에 큼직한 귀꽃을 세웠다. 석등은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모습이 섬세한 문양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국가유산 설명
이 석등은 옮겨 세워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높은 받침을 두고 그 위로는 지붕돌과 상륜부를 올렸다.
아래받침돌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크게 새기고, 위에는 커다란 연화문과 구름문을 장식하여 신성한 느낌을 주고 있다. 가운데 기둥은 장고 모양으로 기교 있게 마련하였다. 윗받침돌은 연꽃을 화려하게 표현하여 장엄함이 연출되도록 했고, 그 위에 있는 화사석(火舍石)은 각 면에 창을 내어 부처의 진리를 상징하는 불빛이 멀리 퍼져나가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큼직한 꽃을 장식하여 멋스러움과 돌을 다루는 석공의 뛰어난 솜씨를 엿보게 한다. 상륜부는 일부만 남아있는데, 팔각형의 큼직한 노반석과 그 위에 다른 부재를 받쳤던 별도의 부재가 놓여 있다.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구례 화엄사 석등이나 남원 실상사 석등처럼 우리나라에서 손꼽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웅장하면서도 비례가 잘 어울려 안정된 모습이다. 당시 진구사의 위상을 엿보게 하는 걸작이다.
This stone lantern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between the 8th and 9th centuries. It is one of the largest stone lanterns in Korea, measuring 5.18 m in height.
Though its top part is partially missing, this stone lantern remains in its complete original form and is decorated with various exquisite patterns.
Initially, it was unknown which temple had been located at this site. However, through a series of excavations conducted from 1992 to 2001, roof tiles with the inscription of the temple’s name “Jingusa” were found from this site.
Jingusa Temple was founded in the 7th century and continued to influence the surrounding area for several hundred years. In 1407, it was designated by the royal court as one of the 88 regional temples for praying for the good of the coun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