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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무안박씨 희암재사(盈德 務安朴氏 喜庵齋舍 / HeamJaesa of Muan Park-family in Yeongdeok)문화재/내가 본 중요민속자료 2022. 11. 17. 22:10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 지정구역[건축물 4동 353.7㎡, 토지 353.7㎡], 보호구역[토지 1,213㎡] 지정일 2022.10.19 소재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숯골4길 248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 무안박씨 무의공파종회 관리자 영덕군 박의장(朴毅長, 1555~1615)
박의장(朴毅長, 1555~1615)을 기리어 제사지내는 곳이다. 박의장의 본관은 무안(務安)이며, 현감을 지낸 박세렴의 아들이다. 박의장은 1577년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가 되었으며, 1588년 진해현감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에 경주판관이 되었다. 일본군이 침공해오자 그는 소속 군사를 이끌고 병마절도사인 이각과 함께 동래읍성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러나 이각이 일본군의 기세에 밀려 싸우지도 않고 퇴각하는 것을 보고 그의 비겁함을 질책했다
그해 7월에 이각이 처형되고 박진(朴晉)이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파견되자, 장기군수 이수일(李守一)과 함께 박진을 도와 일본군에게 빼앗긴 경주성 탈환에 나섰다. 이 전투에서 화차(火車)와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다.
1593년 4월에는 군사 300여 명을 이끌고 대구 파잠에서 일본군 2,000여 명과 맞서 싸워 수십 명의 목을 베고 수백 필의 말을 빼앗는 등 공을 세웠다. 또한 5월에는 울산군수 김태허(金太虛)와 함께 울산의 일본군을 공격하여 50여 명을 베는 전과를 올렸다.
박의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당상관으로 특진되면서 경주부윤이 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초산군(剿山郡)의 적을 공격하여 남문에서 전멸시켰다. 8월에는 일본군이 안강(安康)에 주둔하고 있는 명나라의 군사를 급습하여 200여 명을 사살하자 병사 고언백과 함께 일본군을 추격하여 무찔렀다.1594년 2월 양산의 적을 무찔렀고, 3월에는 임랑포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언양현에 침입하여 노략질하자 이들을 급습했다. 이때 적에게 잡혀 있던 백성 370명을 구해내고 우마 32필도 노획했다. 5월에는 기장에서, 7월에는 경주에서 많은 일본군을 베었다.
박의장은 1595년에 가선대부가 되었다. 1597년에는 영천과 안강에서 1,000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5만 명의 명나라 군사를 도와 일본군과 맞섰다. 이때 적군이 성을 비우고 밤에 퇴각하자 창고에 있던 곡식 400여 석을 거두었다.
그는 1598년 경주 벽도산(건천읍과 율동에 걸쳐 있는 산, 지금의 경주 톨게이트 서쪽)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승리한 공로로 가의대부로 승진했다. 1599년에는 성주목사 겸 방어사가 되고, 1600년에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그 이듬해인 1601년에는 인동부사(仁同府使), 1602년에는 다시 경상좌병사 및 공홍도수사(公洪道水使)를 거쳐 경상수사를 지냈다. 다섯 차례의 병마절도사를 지내는 동안 청렴하고 근신하기가 한결같아 주위로부터 신망과 존경을 받았다.
그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승진했으나 재임 중에 임지에서 사망했다. 영해 정충사(貞忠祠)에 배향되었다. 조정에서는 그에게 선무원종공신 1등의 서훈과 호조판서의 직위를 내려 그의 충절을 기렸다.'문화재 > 내가 본 중요민속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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