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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수사지 출토 유물문화재/내가 본 기타문화재 2021. 2. 3. 10:03
소수서원의 자리도 원래는 통일신라 시대에 숙수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였다. 숙수사 당간지주는 이 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 중에 하나다.
그 숙수사가 없어진 것은 세조의 아우 금성대군(錦城大君)이 순흥에 유배 와서 숙수사를 중심으로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절이 통째로 불태워 진 것이다.
취한대 바로 위의 강가에 있는 바위가 '敬字岩'이다.
경자 위에 '白雲洞'이란 글을 보면 신재 주세붕 선생이 쓴 것이 분명한데 '敬' 이란 글자는 유교의 근본 사상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머릿글자다. 붉게 쓴 ' 敬' 이란 글자에는 세조 찬탈과 관계된 피맺힌 사연이 숨겨 있다.
세조(수양대군)가 조카 단종(端宗)을 내 쫓고 왕위에 오르자 세조 3년(1457) 그의 친 동생인 금성대군(錦城大君)이 이 곳 영주 순흥으로 유배와서 단종 복위 운동을 펴다가 사전 발각되어 이 고을 많은 이들이 '정축지변(丁丑之變)의 참화를 당하게 되었다.
그 시신이 죽계천에 수장되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의 붉은 피가 죽계를 따라 10 여리나 흘러서 지금도 그곳을 '피끝 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에 풍기군수 주세붕선생이 그때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바위에 쓴 '敬' 자에 붉은 칠을 하여 원혼을 달래 주었다 한다.소수서원(紹修書院) 이야기 - 국제인터넷신문 (iinpaper.co.kr)
피맺힌 한, 고통, 살인, 정권, 욕심,
아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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