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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 (慶州 月城)-사적 제16호문화재/내가 본 사적 2015. 3. 19. 19:44
경주 월성 (慶州 月城)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 (慶州 月城)
종목
사적 제16호 명칭
경주 월성 (慶州 月城)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
300,299.2㎡
지정일
1963.01.21
소재지
경북 경주시 인왕동 387-1번지
시대
신라
소유.관리
경주시
설명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경주 월성 (慶州 月城) 경주를 여러번 다녀왔지만 월성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그냥 막연히 황룡사지가 그대로 복원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을 뿐이었다. 이번 월성 발굴조사 결과를 보여주는 뉴스가 있었기에 더 큰 관심을 . 부근 동궁과 계림 석빙고 등은 둘러 보았지만 월성에 남아 있는 것이 없었기에 볼 일이 없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 큰 관심을
발굴 작업도 큰 성과를 기대하게 된다
- 경주 월성 본격 발굴조사로 전환 -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는 지난해 12월 12일 고유제를 시작으로 조사한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慶州 月城, 이하 월성)’ 중앙지역(57,000㎡)의 시굴조사 성과를 공개한다.
이번 시굴조사는 지하 매장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고자 실시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건물지와 담장의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친 토기와 기와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조사지역에서는 기단, 초석, 적심 등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이 중 정면 12칸, 측면 2칸의 3호 건물지(28m×7.1m)는 적심 위에 초석을 올렸고 담장과 배수로가 딸려있다. 유물은 고배, 병, 등잔, 벼루, 막새기와, 귀면기와, 치미 등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토기에는 ‘井’, ‘口’자 형태의 음각기호가 새겨진 것도 있고, 월성의 해자와 안압지에서 이미 발견된 적이 있는 ‘儀鳳四年 皆土(의봉4년(679년) 개토)‘, ’習部(습부)‘, ’漢(한)‘자명의 평기와도 있다.
경주 월성 조사는 천년 고도 경주의 역사정체성을 규명하고, 대통령 공약사항인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왕궁 복원)’의 이행을 뒷받침한다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그리고 1914년 일제가 남벽 부근을 처음 파헤친 지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최초의 내부조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월성은 신라 천년 수도의 궁성(宮城)으로, 서기 101년 파사왕(婆娑王)이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에 신라의 국보였던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국가의 중요시설로 알려져 있다.
* 만파식적(萬波息笛): 신라 신문왕이 682년에 만들도록 한 신라의 국보. 나라에 근심이 생길 때 불면 평온해진다는 전설의 대나무 피리로, 경주 월성 안의 천존고(天尊庫)에 보관하였다고 전한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성과를 토대로 월성 정밀발굴조사의 전환을 오는 20일 개최될 문화재위원회에 부의할 예정이다. 조사품질 향상을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서울 풍납토성과 경복궁, 익산 왕궁리유적, 강릉 굴산사지 등 주요 국가사적을 조사한 인력을 대거 투입하여 조사단의 구성을 적극 지원하였다.
발굴조사와 최신 ICT(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기록화연구(사진학·영상공학·측량학), 성벽 축조공법 연구(토목공학), 절대연대 연구(물리학), 고대 지역생태환경연구(지리학·생물학), 고대 토지이용전략 연구(지형학·도시공학) 등 다양한 학제 간 융합연구가 병행될 계획이다. 그리고 문화재 보존과 지역개발의 효율적인 갈등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발굴조사 콘텐츠 관광자원화 연구, 현장중심 문화유산 교육과 활용 프로그램 개발연구 등도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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