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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암사(國巖祠)문화재/내가 본 기타문화재 2013. 4. 19. 15:42
국암사(國巖祠)
국암사(國巖祠) 국암사(國巖祠) 왕건의 ‘통일 꿈’ 해몽한 별박사 최지몽
김성철 관장의 유배로 읽는 한국사 8
4세기 후반 아직기의 추천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의 태자와 신하들을 가르친 일본지식인들의 영원한 스승 왕인(王仁) 박사. 풍수지리설과 음양도참설의 대가로 태조 왕건이 국사로 삼은 도선(道詵)스님. 그리고 도선국사가 사망한 9년 후인 907년에 태어나 63년간 고려의 태조,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등여섯 임금을 섬긴 최지몽(崔知夢)은 영암의 영산(靈山) 월출산이 낳은 걸출한 인물들이다.
최지몽은 원보(元甫) 최상흔(崔相昕)의 아들로 처음 이름은 총진(聰進)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글을 배운 총진은 학문을 좋아하고 온화, 인자하며 청렴결백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총진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기이한 행동을 자주 했다. 밤이면 별을 쳐다보며 웃다가 울기도 해 마을사람들은 별귀신이 붙은 아이라며 이상히 여겼다.어린 총진은 천문학에 정통했고, 주역을 줄줄 외워 스승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리고 점은 귀신같이 알아맞히었다. 이 즈음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했다. 어느 날 왕건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후삼국 통일을 꿈꾸던 왕건은 꿈이 궁금했다. 신하들은 꿈 해몽을 잘하는 자를 불러들이라는 어명을 받고 수소문한 끝에 전라도 영암의 최총진이 꿈 해몽을 잘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불러오게 했다. 영암에 도착한 신하들은 총진이 사흘 전에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는 집안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그때 이미 총진은 송도 궁궐 문 앞에 서 있었다.
“수문장 어른, 왕명을 받잡아 전라도 영암에서 올라왔사오니 대왕마마를 알현케 해주십시오,”
“이런 놈이 있나. 어리디 어린 시골 촌뜨기가 나를 놀리는 게냐?”
“상감께서 큰 꿈을 꾸시고 저에게 해몽을 부탁하기에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왔사옵니다.”
수문장은 왕명을 빙자한 어린 청년의 말이 어이가 없었지만 왕명이라 우기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궁궐로 들어가 확인한 수문장은 황급히 총진을 어전으로 들여보냈다.
“사신이 도착하지도 않았을 터인데 어찌 알고 이리 일찍 왔는고?”
“사흘 전에 별을 보고 있노라니 삼감마마께서 후삼국을 통일할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나이다. 그리고 필히 저를 부르실 것이라 여겨 미리 올라왔습니다.”
태조는 자신이 삼국통일을 할 것이라는 꿈을 미리 알고 왔다는 청년의 총명함에 탄복했다. 왕건은 즉석에서 ‘꿈을 알고 있었다’고 해서 알 지(知) 꿈 몽(夢)의 지몽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리고 공봉(供奉)작을 제수하여 총애하게 되었다. ‘의심이 되면 중용하지 말고, 중용했으면 의심하지 말라’고 했듯이 태조는 최지몽을 끝까지 중용하여 후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했던 것이다.
태조가 승하하고 맏아들 왕무(王武) 왕위에 오르니 제2대 혜종이다. 즉위 이듬해인 945년 병이 들어 신덕전(神德殿)에 머물렀다. 최지몽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혜종의 참변을 예고하고 있었다. 최지몽은 혜종의 거쳐를 옮기게 함으로써 왕을 구했다. 이것이 왕규의 반란이다. 혜종의 위기를 구하고 정종의 즉위를 도와 40여 년을 고려 왕실의 버팀목이 되었던 최지몽은 귀법사(歸法寺)에 행차한 광종을 호종하면서 취중에 무례한 행동을 하여 11년 동안 외걸현(?傑縣)에 유배되었다.[좌천이라는 설도 많지만 먼 곳으로 장기간 충군된 경우도 넓은 의미의 유배형에 해당하므로 유배로 보기로 한다.]
최지몽은 경종 5년(980) 다시 등용되어 별자리점으로 왕승(王承)의 반역을 미리 알려 위기를 모면시켰다. 별박사 최지몽은 점으로 모반을 미리 알아내어 왕위찬탈을 방지한 고려왕조의 안정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경종이 요절하자 천추태후의 오빠인 왕치를 성종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최지몽은 987년 81세에 병으로 사망했다. 태자태부?태사에 추증되었으며, 994년 경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민휴(敏休)이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국암사에 주벽으로 모셔져 있으며 1977년 유적비가 세워졌다.http://www.nh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35에서
국사암(國師巖) 국사암(國師巖) 도선국사 출생의 전설
1.선각 국사 도선의 어머니인 최씨 부인이 한 겨울에 도암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푸른 참외 하나가 물에 떠 내려왔다. 그래서 계속 물에 흘려 보냈지만 그 참외가 최씨 부인에게 자꾸만 다시 되돌아 와서 이를 귀하게 여겨 건져 먹었다.
그 후로 임신을 하게 되었고 해산때가 되어 아들을 낳았는데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았으므로 괴상한 일이라 여기며 깊은 숲 속에 있는 바위에 가져다 버렸다.
여러 날이 지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곳에 가보니 비둘기들이 날개로 아기를 덮어 보호하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 여기고 집으로 데려와 정성을 다하여 길렀는데 이 아기가 훗날 선각국사 도선이다.
그 후 이 바위를 국사암이라 부르게 되고, 바위가 있는 근처를 국사암 마을이라 했다. 국사암 옆에는 낭주 최씨 부인의 사당이 있고 그 사이로 아름드리 단풍, 동백나무 그리고 민들레가 만발하게 우거져 있다.2.신라 시대 말엽이다. 우람한 월출산 기슭에 자리잡은 성기동 마을 처녀가 북풍이 매섭게 불어오는데도 불구하고 빨래감을 이고 성기동 통샘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슨 날씨가 이렇게 춥다냐?"
처녀는 한참동안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바라보다가 빨랫감을 맑은 물에적신후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빨래가 거의 끝날 무렵 처녀는 손이 시려 두 손을 겨드랑이에다 대고 손을 녹이고 있었다. 그때파란 오이 하나가 떠내려와 처녀의 발밑에 있는 것이었다.
"이 추운 겨울에 웬오이가 떠내려왔을까?"
처녀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방망이를 주워 들고는 오이를 떠다밀며, 마지막 남은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오이는 처녀가 떠밀자 시냇물을 따라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빨래를 다 마쳤을 때였다. 조금 전에 빨래 방망이로 떠밀어 내었던 그 오이가 다시 흐르는 물줄기를 거슬러 처녀가 있는 곳에와서 떠 있는 것이다.
"이상한 일도 다 있네. 내가 방금 떠밀었는데 오이가 다시 오다니."
처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파란 오이를 물에서 건져내 씻어 한 입 베어 먹었다.
빨래를 한 뒤라서인지 오이 맛이 무척 앗있었다. 처녀는 오이 하나를 다 씹어 먹고는 빨래감을 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몇개월이 지난 때였다.
처녀의 배가 똥똥하게 불렀다. 10달 후 도선이 태어났다.
http://cafe.daum.net/pianoyl/OTLt/90?docid=4177282299&q=%B5%B5%BC%B1%B1%B9%BB%E7&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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